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고 “저의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했다. 당시 여당 대변인은 ‘사죄’ 표현과 함께 “오로지 국민 눈높이에서 환골탈태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로 헌정질서를 위협했다. 8년 전 탄핵과 비교할 때 사유가 더 엄중하고 명확하다. 그런데 당 분위기가 과거와 다르다. ‘1호 당원’ 대통령이 탄핵된 데 대한 사과나 반성의 메시지는 없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직후부터 국민의힘은 지금껏 당내 주도권 다툼에 몰두하고 있다. ‘배신자 프레임’이 그것이다.
3년 뒤 지역구 표심만 보는 정치인들
국민의힘 의원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엔 얼마 전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겨냥해 “민주당 부역자는 (당에서) 덜어내자”라거나, “90명이라도 똘똘 뭉치자”는 글이 올라왔다. 의원들의 개인 SNS엔 “쥐××” 같은 더 심한 말들이 넘쳐난다. 탄핵안 표결 직후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탄핵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을 향해 “의총장에서 나가라”는 고함이 쏟아졌고, 심지어 “한 명씩 일어나 찬반, 기권 등을 밝히자”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국민의힘이 왜 이럴까.
국민의힘에 속한 대다수 정치인들의 관심이 ‘국민의 민심’이 아닌 ‘3년 뒤 지역구 표심’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 다수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남이가’ 또는 ‘저 자는 배신자’라는 한마디가 지역에서 표를 얻는 데 더 유리하다고 믿는 것이다. 민심과의 괴리는 그래서 생긴다.
이는 영남·강원권에 의석이 집중된 국민의힘의 지역 기반과도 관계가 깊다. 지금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 90명 가운데 영남·강원 의원이 72.2%에 이른다.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122석 중 19석을 얻는 데 그친 반면, 영남·강원에선 73석 중 65석을 얻었다.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 안에선 영남 주류의 뜻에서 벗어나게 되면 당 대표나 지도부도 생존할 수 없게 됐다. 현 정부 출범 이래 2년 7개월여 동안 약 3개월에 한 번꼴로 당의 얼굴이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당의 혼란이 커질수록 주류 곁에 바짝 붙어 있어야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지역 소수당’ 재집권-국정운영 어려워
2016년 총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당은 사실상 지역 소수 정당으로 그 위상이 떨어졌다. ‘배신자 프레임’이 등장하고, ‘진박 공천’이 당내 화두로 떠오른 시기다. 이후 보수 정당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전 국민을 향해 환골탈태를 외쳤지만 당의 미래, 쇄신이 달린 당 주도권 다툼에선 소수 강경 지지층의 목소리를 등에 업은 ‘배신자 프레임’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 결과가 총선 내리 3연패다. 2016년 새누리당의 수도권 의석은 37석이었지만 지금은 19석밖에 안 된다. 수도권에서 83석을 얻어 당내 지역구 당선자의 55%를 수도권이 차지했던 2008년과 비교하면 같은 정당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대로라면 국민의힘은 다수당이 되기 어렵다. 설령 대선에서 다시 승리하더라도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또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전국지표조사(NBS·12월 16∼18일 조사)를 보면, 78%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가 ‘잘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대해 ‘가급적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68%에 달했다. 거의 모든 국민이 느닷없는 계엄 선포에 놀랐고 대다수가 조속한 헌정질서 회복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안에선 여전히 “탄핵까지 갈 사안이 아니다”는 의원들이 대다수다. 국민의힘은 수도권과 중도를 아우르는 정상적인 수권 정당의 길을 포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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