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80〉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0일 23시 06분


겨울의 한 모퉁이에 서 있는 것이다
시린 발을 구르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 해도

기다리는 것이다

이따금 위험한 장면을 상상합니까 위험한
물건을 검색합니까 이를테면,
재빨리 고개를 젓는 것이다

남몰래 주먹을 쥐고 가슴을 땅땅 때리며

(중략)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지나치게 희고 따뜻한 것 어느 고요한 밤
찾아든 귓속말처럼
몹시 부풀었다 이내 수그러지는 것

텅 빈,

다시 부푸는 것

―박소란(1981∼)


헤르타 뮐러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그의 소설 중에 ‘숨그네’가 있다. 숨이 그네를 타듯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숨이 아슬하게 그네를 탄다는 말은 죽을 듯 위험하다는 뜻이다. 맞다. 숨이란 그냥 자연스럽게 쉬는 거다. 우리 같은 포유류에게 숨이 애써 쉬어진다는 것은 힘들다는 이야기다. 공황장애나 불안이 찾아오면 숨을 가쁘게 쉬는데도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 든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남몰래 가슴을 치면서 숨을 기다려 본다. 겨울이라서 숨은 하얀 김이 되어 나온다. 내 안에서 나온 하얗고 따뜻한 것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숨을 쉬고 싶어진다. 잘 쉬고 싶어진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의외로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꾹 참고 살다 보면, 이렇게 숨 하나 쉬는 것도 잘 안 될 때가 있다.

올해 나온 시집 중에 딱 한 권만 가지고 여행을 가라고 한다면, 오래 생각할 것 없다. 나는 박소란의 ‘수옥’을 품에 안을 것이다. 이 아프고 쓰라린 시집이 좋은 것을 보면 마음속 어딘가에 아프고 쓰라린 사람 조각이 남아 있나 보다.

#숨#박소란#시#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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