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관계자가 전한 얘기다. 지금은 전직이 된 한 대통령실 참모가 임명된 지 얼마 안 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러 갔다. 윤 대통령은 이 참모에게 “아내에게도 같은 내용을 보내 달라”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 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같은 내용을 김건희 여사에게도 전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다 조작된 거 아닙니까”
여권의 다른 인사가 전한 말도 놀랍다. 낮은 국정 지지율에 윤 대통령에게 지지율을 높여야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돌아온 대답은 “지지율 여론조사는 다 조작된 것”이라는 취지였다. 윤 대통령이 “경기장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고 하더니 전광판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전광판이 조작됐다고 생각했다는 얘기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때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훨씬 전부터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가 진짜 벌어졌다고 믿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의 얘기다. 윤 대통령이 2022년 당선된 뒤 얼마 뒤의 일이다. 한 만찬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이겼지만 실은 부정선거가 아니었으면 이재명 후보를 더 큰 격차로 이겼을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한 의원이 “부정선거로 표 차이가 줄어드는 일은 없다”고 지적하자 윤 대통령이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은 그의 이런 인식이 인식으로 끝나지 않은 결과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뒤에도 그의 인식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본보 기자들이 계엄 해제 다음 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계엄군의 선관위 투입이 윤 대통령의 뜻이라는 얘기를 어렵게 들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자신이 선관위에 계엄군 투입을 지시했다는 점을 자랑하듯 쉽게 공개했다.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계엄군을 진입시키는 게 위헌적임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만큼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이라 믿고 있다는 뜻이다. 이날 그의 담화는 극우 극렬 지지층을 결집시켜 아스팔트에서 자신의 탄핵을 반대해 달라는 선동으로 보였다. 어쩌면 더한 집단행동을 부추기려 하는지도 모른다.
탄핵 심판의 법적 다툼은 헌법재판관들이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설사 여당 일각과 극렬 지지층의 바람대로 직무에 복귀한다 한들 누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신뢰하겠나. 대다수 국민이 그를 군 통수권자로 인정하겠나.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이 그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지도자로 인정하겠나. 탄핵 심판과 별개로 그는 이미 스스로 대통령 자격을 잃게 만들었다. 스스로 대통령 자격 잃게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이미 비상식적 인식을 드러냈다. 경선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적은 채 대선 경선 TV토론에 나왔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었다. 당시 무속인이 개입했다, 주술 대선이 되고 있다는 비판에 윤 대통령은 “토론을 잘하라는 지지자 응원 메시지였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측은 당시 “윤 후보가 손가락 위주로 손을 씻어 ‘왕’ 자가 안 지워졌다”는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을 했다. 지금 보니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 전부터 윤 대통령을 도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손바닥 안의 ‘왕’ 자를 보며 대권을 꿈꿨을 것이다. 그는 3년 뒤 손바닥만 한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며 그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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