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형제의 모험’이란 동화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데는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덕이 크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 국민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쓴 이 작품이 한강의 문학관에 영향을 줬다고 전해지면서 관심을 받게 됐다.
이 책은 서로를 무척 아끼는 두 형제가 사후 세계를 누비는 판타지적 모험기이다. 천국처럼 아름다운 세계에도 가는 곳마다 폭력과 아픔이 있다. 세상은 심지어 이들이 죽은 후에도 평안을 누리며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무자비한 세계에 희생되는 형제의 순수한 마지막 모습은 한강이 한 강연에서 밝혔던 것처럼 ‘불꽃에 덴 것 같은’ 놀라움을 준다.
한강은 이 책을 열두 살 때 읽었다고 한다. 그때 그가 어린 독자로 받았던 충격은 이번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밝혔던 한강 문학의 핵심적 질문 “세상은 왜 이리도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작가 스스로 이 책을 읽은 뒤의 충격을 이 문장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한 작가의 문학세계가 유년기 인상 깊은 독서 경험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형성되는 신비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노벨 문학상의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독서율을 자랑하는 스웨덴은 이처럼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강은 노벨상 시상식 다음 날 스톡홀름 외곽의 한 학교에서 10∼15세 학생들을 만났다. 다문화 가정이 많은 이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초청해 여는 노벨재단의 36년 된 전통 행사다.
학생들은 한강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부터 ‘흰’ ‘소년이 온다’ 등 한강 소설 발췌본 혹은 전체를 읽고 토론하며 두 달간 한강 공부를 했고 느낀 점을 시, 그림, 노래로 표현했다. 작가에게도 “평생 못 잊을 감동”이었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한 작가의 작품을 깊이 있게 독해하고 재창조해 보는 이곳의 독서 교육이 부러워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고대해 왔고 올해 그 숙원을 이뤘지만, 독서 문화의 수준은 노벨 문학상 배출국이라고 하기엔 낯부끄럽다. 연간 성인 종합독서량 3.9권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166위)이다. 청소년의 경우 36권으로 좀 더 많지만 아이들이 꼽은 첫 번째 목적이 ‘학업’(29.4%)인 점은 못내 아쉽다. 마지못해 책을 펼친 학생들이 책 안 보는 어른이 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스톡홀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강은 ‘제2의 한강’을 배출하기 위해선 “어릴 때부터 최소한 문학작품 서너 권을 학교에서 읽고 토론하며 문학작품 읽는 근육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깊게, 흥미롭게 읽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독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자신의 어릴 적 독서 경험이 작가로서의 세계관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수많은 논의가 나오지만, 결국 걸출한 작가를 배출해 내는 토양은 안목과 열정을 갖춘 독자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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