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들이 첫인상과 다르다며 공통으로 놀라는 지점이 있다. 바로 내 오랜 장롱면허. “예에? 진짜요? 한 손으로 스포츠카도 몰 것 같은데”라고들 덧붙인다.
타고난 길치에 기계치인 데다 겁까지 많다 보니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면허 자체는 많이들 그렇듯 취업하자마자 필수 자격증 개념으로 따 놓았다. 기본 상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공부하지 않고도 70점 적당히 넘겨 합격하는 필기시험을 시험공부하듯 준비해 딱 한 문제 틀렸고, 도로 주행도 코스별 주의 사항을 암기해 무려 한 번에 합격했다. 그건 마치 학창 시절 실기 평가를 위해 연마하던 납땜이나 농구 같은 거였다. 결코 할 줄 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언젠가 큰맘 먹고 도로 주행 수업을 받았는데 회당 10만 원에 가까운 비용도 비용이지만, 앉은 자세에서도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더니 사거리 한가운데에서 그만 패닉이 왔다. 보다 저렴하고 안전한 시뮬레이션 학원도 다녀봤지만, 등록할 때만 해도 세상 친절하던 선생님이 나중에 가서는 ‘운전을 꼭 하셔야 하겠냐’고 빈정거리기에 이르렀다. 수치스러웠다. 무언가를 이렇게까지 못한 적이 있었던가? 그 뒤로 운전은 사실상 포기였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을 보며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이 어려운 걸 다 하고 사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편함이 두려움을 압도했을 때,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하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운전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 일반에 대한 신뢰라는 것. 처음엔 모든 차가 잠재 위협으로 느껴져 그 사이를 달리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웠다. 큰 차 한 대만 들어와도 움찔거리고, 누가 갑자기 깜빡이를 켜진 않을까, 혹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들지는 않을까 내내 불안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생각보다는’ 사고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방어운전을 잘하고 있고, 조금 위험할라치면 클랙슨을 울리든 피해 가든 이 세계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노란 초보운전 딱지를 두 장이나 붙이고 다닌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도로 위의 초보 딱지가 꼭 어릴 적 놀이터의 ‘깍두기’ 같다는 것이다. 조금 느려도 참아주고, 서툴러도 비켜주는, 어린 동생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도록 봐주던 언니 오빠들의 배려 같은 것. 가끔 도로에서 다른 ‘깍두기’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묘한 동지애마저 느껴져 속으로 ‘그쪽도 힘내세요!’ 응원하고, 끼어들기 실패라도 하면 함께 안타까워한다.
“운전은 기능이야. 하는 만큼 늘어.” 아버지 말마따나, 도로 위에서는 모두가 공평하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건 간에 시작점은 같다. 다 같은 ‘깍두기’일 뿐이다. 누구든 시간을 들인 만큼 성장하는 평등하고 정직한 세계. 어릴 땐 회피하고 싶었던 그 정확함이 새삼 반가운 것은 세월의 선물일까.
달리기하는 마음으로 운전을 한다. 시간이 쌓이는 만큼 실력도 쌓이리라.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다 보면 언젠가는 노란 딱지를 뗄 수 있겠지. 한 손으로 스포츠카도 몰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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