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벌어진 3일 미국인 지인이 이렇게 물어왔다. ‘나도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다.
윤 대통령의 ‘황당 계엄’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날 모든 미국 언론은 한국 기사로 도배됐다. 구글 트렌드 검색어 집계에선 전날까지 0에 가깝던 ‘계엄(martial law)’, ‘윤석열’ 검색 관심도가 미 전역에서 최고치인 100으로 증가했다.
2020년대에 계엄이란 단어와 함께 언급되는 나라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선혈이 낭자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과 아이티, 미얀마 정도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느닷없이 잘나가던 ‘K’를 끌어내리고 이런 단어를 갖다 붙였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불가역적 피해 준 대통령의 계엄
계엄 후 20일이 지났다. 그사이 체감하는 한국을 보는 미국의 시선은 이전과 다르다. 전에는 ‘K팝’, ‘K드라마’, ‘K푸드’를 말하던 이들이 이제는 계엄을 말한다. ‘드라마 속 한국이 너무 쿨하고 예뻐서 꼭 가보고 싶다’던 이들이 이젠 ‘가도 안전하냐’고 묻는다.
얼마 전 만난 한 한국인 월가 관계자는 “큰 계약을 앞두고 서울 출장을 가야 했던 미국인 동료가 ‘신변이 괜찮을지 걱정’이라며 전화를 했더라”며 “‘한국에서 들어오는 거래 주문을 받아도 괜찮냐’고 묻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한 기업 주재원은 “이웃들이 한국의 가족들을 미국으로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더라”고 전했다. 계엄 사태 이후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안 그래도 무서운 북한의 전쟁 위협에 계엄 리스크와 극심한 정치 갈등까지 폭발하는, ‘카오스적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요즘 뉴욕의 주재원과 교민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는 ‘쪽팔린다’다. 지난 십수 년간 민관이 진행해 온 ‘국격과 국가 브랜드를 높이자’는 노력이 허탈하다 못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다.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는 국가의 피해다.
리더십 부재에 경제 산업 위기 심화
돈으로 환산되는 피해도 이미 어마어마하다. 당장 계엄 당일 해외 증시에 상장돼 있던 우리 기업들의 주가는 최대 7% 넘게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15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1450원대를 돌파했다. 한국 역사에서 1450원대 환율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단 두 번뿐이다. 그땐 다양한 경제, 산업적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대통령이 스스로 이 상황을 만들었다. 환율 급등은 몇 달 뒤 한국 기업의 실적 악화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한국 직장인들의 월급 명세서와 주식 계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국가 간 외교전과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신경공학, 우주산업 등 최첨단 미래 산업을 선점하려는 미국과 중국 간 경쟁도 뜨겁다.
한국도 정부와 기업이 온통 달라붙어 밀어주고 끌어줘도 부족할 때지만 어디서도 국가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그들만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한국 기업들은 부모 없는 아이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비하려 현지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이 모든 건 처음부터 너무나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계엄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되겠다던 그는 나라를 걸고 자폭해 버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