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 회원국의 원유 금수 조치로 시작된 1차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꿨다. 국제유가가 4배로 뛰면서 미국에선 기름 많이 먹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대형 세단 대신 작고 연비 좋은 일본 차를 찾는 소비자가 폭증했다. 이때 약진한 ‘일본 차 3총사’가 도요타, 혼다, 닛산. ‘내구성의 도요타, 엔진의 혼다, 기술의 닛산’이라 불려 각 회사의 개성도 뚜렷했다.
▷도요타에 이은 일본 내 2·3위, 글로벌 순위 7·8위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세계 자동차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닛산이 최대 주주로 있는 4위 미쓰비시자동차도 합병 대상이다. 일본 2∼4위 완성차 업체가 한 지붕 안으로 들어가는 대규모 지각변동이다. 세 회사의 작년 세계 판매량은 총 813만 대. 1123만 대인 1위 도요타와 923만 대인 2위 독일 폭스바겐보다 적지만 730만 대인 현대차·기아를 넘는 3위 수준이다.
▷내연차 기술에 집착하다가 전기차 시대에 늦게 대응한 일본 차는 중국 시장 판매량이 급감하고, 한때 완전히 평정했던 동남아 시장에서도 값싼 중국 전기차에 밀리고 있다. 중국 비야디(BYD)의 글로벌 판매 대수는 1년 안에 혼다를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 아이폰을 위탁 생산해 돈을 번 대만 폭스콘이 전기차 진출을 위해 닛산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합병 속도가 빨라졌다. 1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카마겟돈(Car+아마겟돈)’에 직면해 오랜 경쟁 기업이 한 몸이 돼 생존하는 길을 선택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후 저조한 중국 실적, 러시아 시장 철수 등 악재를 이겨내고 글로벌 3위에 오른 현대차·기아에 두 회사의 통합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폭스바겐이 흔들리면서 머잖아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2위 자리까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닛산의 악화된 내부 사정 탓에 합병의 시너지가 크지 않을 거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도요타에 이어 다양한 경쟁 차종을 보유한 ‘일본산 공룡’이 등장하는 건 만만찮은 도전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등에 업고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각국의 보조금을 받아 회사를 키워 놓고, 이젠 사다리를 걷어차겠다는 심보다. 중국 BYD는 한국 진출을 예고해 놓은 상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싱가포르 현대차 혁신센터를 찾아 “우리가 걸어온 여정은 훌륭했지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거센 도전이 더 많이 닥친다는 건 그만큼 정상이 가까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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