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최근 낸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탄핵의 정치학’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을 막는 세 가지 방패가 있다. 일단 여당에서 탄핵 소추를 막아내면 ‘의회 방패’가 된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탄핵 심판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기각하면 ‘사법 방패’로 인해 탄핵은 실패한다. 아니면 노무현 탄핵 때처럼, 탄핵 소추부터 심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대중이 나서 탄핵을 강하게 반대해도 탄핵은 성공하기 어렵다. ‘대중 방패’다.
이 셋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민심을 담은 대중 방패일 것이다. 국회가 탄핵 소추를 주저하거나, 헌재에서 법리적으로 고민하더라도, 여론이 탄핵을 강력하게 요구하면 의회 방패나 사법 방패도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탄핵 때가 그랬다. 노무현 탄핵 실패 트라우마로 탄핵 추진을 주저하던 국회를 움직이게 했던 건 한겨울에도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집회였다.
14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로 열흘간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작정하고 시간 끌기에 들어간 듯하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더니 경호처 뒤에 숨어 출석 요구엔 불응하고, 탄핵 심판 관련 서류도 수령하지 않고 있다.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변호인단 대표로 정했다면서 변호인 선임계도 내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라는 석동현 변호사는 ‘시간 끌기’라는 지적에 “국회의 탄핵 가결이 성급하게 이뤄진 측면이 있다”, “대통령께서 최고의 변호인단을 구성하기 위해 여러 생각을 하고 준비 중”이라며 오히려 발끈했다. 야권 관계자는 “검사 출신 윤석열이 최고 전관들을 동원해 끝까지 법리 다툼을 해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사법 방패를 시도해 보겠다는 것이다.
‘도로친윤당’이 된 국민의힘을 앞세운 의회 방패도 다시 동원하려는 듯하다. 한동훈이 쫓겨난 자리는 친윤 핵심 권성동 원내대표가 기다렸다는 듯 꿰찼다. 그는 취임 후 첫 회의에서 “대통령 궐위 시엔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지만, 대통령 직무 정지 시엔 임명할 수 없다”고 했다. 궤변 같은 그 말을 신호탄 삼아 국민의힘은 국회 몫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관련 일정에 일제히 불참하고 있다. ‘내란’이란 단어에 발끈하며 상임위 퇴장도 밥 먹듯 하고 있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선 “왜 자꾸 내란이라고 하느냐” “내란 여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항의했고, 외교통일위원회에선 ‘내란 수괴’라는 표현을 두고 싸우다 결국 퇴장했다. 홍길동도 아니고, 내란을 내란이라 부르지 못하면 뭐라고 부르나.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윤석열과 여당의 정신 승리와 달리 탄핵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중 방패’는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들어 보인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여론조사 업체가 16∼18일 전국 18세 이상 1002명에게 물은 결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잘된 결정’이란 응답이 78%였고, ‘탄핵이 인용돼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것’이라고 보는 응답자는 73%였다. ‘헌재가 탄핵 심판 결론을 가급적 빨리 내야 한다’는 응답도 68%였다. 대중 방패를 기대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국민이 그날 새벽을 지새우며 불법 계엄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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