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추석처럼 서구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홈 커밍 데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때 가장 많이 돌았던 유언비어라면 “이번 성탄절 전에 전쟁이 끝난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 후 프랑스를 해방시키던 연합군 병사들, 태평양의 정글에서 무더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던 병사들, 인천상륙작전 후 38선을 넘어 북진하던 유엔군 병사들, 심지어는 모스크바를 향해 러시아 평원을 달려가던 독일군 병사들도 이번 크리스마스엔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문처럼 품곤 했었다.
그들 중 많은 병사들이 영원히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온 병사들도 결코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그나마 전후에 안정된 삶을 살고, 여유를 가지고 과거를 돌아보는 참전 병사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나는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전쟁은 생존자에게도 너무나 큰 고통을 안긴다. 그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유가족이 된 아내와 자녀들이다. 평생 동안 그들은 온전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따뜻한 세모를 맞이했던 가족들도 있었다. 그들을 위로하고 병사의 희생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이웃들, 그들을 돌보고, 주기적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행사에 초대하는 지역사회와 국가가 있었다.
가난했던 과거에는 정말 부끄러웠지만, 요즘은 우리 사회의 보훈 정책도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황당한 소식을 듣는다. 연평해전 전사자에게 1계급 특진을 시켜주었는데, 연금은 이전 계급을 기준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유가족이 1년 동안 시위를 해서 간신히 내년부터 시정된다고 한다. 그나마 시정이 돼 다행이지만,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표가 되는 곳에서는 인권과 복지를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진정성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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