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내빈’ K-콘텐츠, 토종 플랫폼 키우자[기고/한종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4일 22시 51분


한종엽 삼일PwC 미디어산업 리더
한종엽 삼일PwC 미디어산업 리더
내일부터 방영될 ‘오징어 게임 시즌2’에 한국 드라마 사상 최대인 10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고 한다. 드라마 제작비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회당 평균 3억∼4억 원이었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30억 원 수준까지 뛰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K-콘텐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판을 키운 것이 영향을 미쳤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제작비 탓에 K-콘텐츠 산업의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부실한 외화내빈(外華內貧) 상태에 처해 있다. 최근 여러 건의 인기 드라마를 성공시킨 제작사마저 영업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제작비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며 방송사는 수익성 악화로 제작 투자 여력이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배급이나 편성이 불투명해진 소규모 독립 제작사의 수익에도 변동성이 높아졌다.

이는 콘텐츠 유통의 구조적 변화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동영상 시청이 보편화되면서 콘텐츠 유통 플랫폼에서 OTT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이제 ‘거실의 TV’보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다. 동시에 기존 국내 방송 사업자나 규모가 작은 토종 OTT 사업자는 글로벌 OTT의 제작 투자 규모와 방식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매체 광고 시장 정체로 지상파 방송국을 비롯한 방송 사업자가 편성을 줄이면서 글로벌 OTT의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최근 4년(2020∼2023년)간 국내 OTT 시장에서 흑자를 기록한 건 글로벌 OTT 사업자인 넷플릭스뿐이었다. 토종 OTT 사업자인 3곳(티빙·웨이브·왓챠)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제 OTT는 콘텐츠 유통 주체이자 콘텐츠의 주요 투자자로, 콘텐츠 밸류체인(가치사슬) 곳곳에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업체인 PwC에 따르면 글로벌 OTT 시장의 2020∼2023년 연평균 성장률은 무려 22.6%에 달한다. OTT는 드라마 제작 및 유통 시스템뿐만 아니라 영화 부문 및 예능 부문에까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여기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K-콘텐츠는 글로벌 OTT의 하청기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K-콘텐츠의 경쟁력을 제고하려면 토종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콘텐츠 제작 투자 방식의 변화를 포함한 플랫폼의 대형화와 다양한 지역의 해외 진출이라는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사업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야 살아남는다. 플랫폼의 통합과 합병을 기반으로 콘텐츠 투자 및 판매 방식에서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해외 진출의 경우 직접 진출보다 현지 주요 OTT와의 제휴 파트너십이 더 효율적이다. 현재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나 동남아, 남미 등 북미, 유럽 이외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는 현지 OTT 업체의 존재감도 크다. 특히 K-콘텐츠는 동남아권에서 인기가 높아 로컬 OTT에서 인기 상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로컬 OTT를 비롯한 해외 플랫폼과 제휴 등을 통해 시청자 기반을 넓히고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OTT와 같은 플랫폼 시장은 승자독식의 구조를 가진다. 선순환에 먼저 들어선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면 나머지 플랫폼은 퇴출된다. 지금이라도 토종 콘텐츠 플랫폼은 합종연횡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제작 투자 방식을 혁신하며 해외 플랫폼과의 제휴를 통해 국내외에서 K-콘텐츠의 창구를 넓혀야 한다. 이를 통해 콘텐츠 산업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이것이 콘텐츠 제작과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을 때 K-콘텐츠의 미래를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외화내빈#K-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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