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곧 닥쳐올 화웨이 리스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5일 23시 15분


박형준 산업1부장
요즘 어딜 가도 대통령 탄핵 이야기만 들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두 번째 집권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트럼프 불확실성에 둔감해진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특히 ‘화웨이 리스크’ 대비는 아예 잊은 것 같다. 하지만 트럼프 2기는 또다시 한국에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고, 그 강도는 1기 때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美, “미군 철수” 으름장 놓을 수도

화웨이에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불신은 뿌리 깊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 런정페이(任正非)는 1987년 화웨이를 설립해 소형 통신장비를 팔았다. 미국은 화웨이가 통신장비를 이용해 기밀정보를 중국 정부에 빼돌린다고 경계했다. 미국은 구두경고를 해오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칼을 빼 들었다. 2019년 5월 화웨이와 계열사 70곳을 수출제한 목록에 올리면서 제재에 나선 것이다.

미국은 글로벌 통신망, 위성, 해저 케이블 등을 통해 세계 정보를 장악해 왔다. 중국 통신장비가 깔리면서 정보가 새 나가는 것을 미국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 통신사업 자력갱생의 상징인 화웨이를 또다시 때릴 수밖에 없다.

미국은 우방국에도 같은 조치를 하도록 요구했다. 미국이 디지털 시대 패권을 구축하는 모습을 다룬 저서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에 나온 한 대목을 소개한다. “2020년 2월 트럼프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의 통화에서 존슨 총리가 영국 통신기업의 화웨이 설비 구입 중단 요구를 거절하자 ‘졸도 직전까지’ 격분하며 그를 맹비난했다. 트럼프의 분노는 언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 같은 미국의 압박에 일본, 호주, 영국, 프랑스 등이 화웨이 장비를 배제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버텼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의 매출은 2020년에 정체됐고 2021년엔 급감했다. 하지만 2023년 화웨이 매출은 회복세로 돌아섰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 점유율은 화웨이가 31.3%로 1위였고, 이어 에릭손(24.3%), 노키아(19.5%), ZTE(13.9%), 삼성전자(6.1%) 순이다. 미국 제재에도 화웨이가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국내 이동통신 업계에서 화웨이 장비 점유율은 10% 정도 된다. 하지만 화웨이는 지속적으로 가격 대폭 인하, 기존 통신장비 철거 비용 부담 등을 내걸며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 이통사는 노후 장비 교체 후보로 화웨이 제품을 꼽고 최근 검수까지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단속을 하기도, 그냥 놔두기도 애매한 상태에 놓였다. ‘안보 우려가 있다’는 추측만으로 민간 기업의 투자 결정을 막기는 힘들다. 대중 외교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화웨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서 연간 조 단위 규모의 D램, 낸드플래시를 구매하는 고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의 무대응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을지도 모른다. 미국 의회는 2020년 말 해외에 미군 병력을 배치할 때 주둔 국가에서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5G 이동통신 기술을 사용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조항을 국방수권법안(NDAA)에 포함시켰다.

韓도 ‘바이 코리아 퍼스트’ 나설 때

정부가 나서기 힘들다면 기업이 자발적으로 ‘바이 코리아 퍼스트’를 선언하면 어떨까. 낡은 통신 인프라를 바꾸고, 인공지능(AI)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국산 통신장비를 최우선하는 것이다. 이는 국내 통신장비 산업 육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인 국내 통신장비 업체에 훌륭한 산타의 선물이 될 것이다.

#트럼프#화웨이#화웨이 리스크#통신장비#글로벌 통신망#이동통신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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