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기콩팥병(말기신부전) 환자는 복막투석이란 쉬운 방법을 두고 왜 병원에서 힘들게 혈액투석을 받는지….”
최근 만난 대한신장학회 소속 의사들은 신장이 고장 나 제대로 기능을 못할 때 받는 투석 치료 중 환자 대부분이 혈액투석을 선택하는 독특한 국내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몸의 노폐물을 걸러주고 체내 수분과 염분의 양, 그리고 전해질 및 산·염기 균형을 조절하는 신장(콩팥)은 상당히 망가져도 그 기능을 끝까지 한다. 다만 노폐물을 걸러주는 기능이 85% 이상 망가지면 이땐 신장이 제 기능을 거의 못하는 말기콩팥병 상태가 된다.
국내에선 말기콩팥병 환자가 최근 급증세다. 국내에서 인구 100만 명당 말기콩팥병 발생자는 최근 연평균 18.6명씩 늘어 증가세가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다. 2010년 5만8860명이었던 말기콩팥병 환자는 2023년 무려 13만7705명으로 2.3배가 됐다. 환자 1인당 진료비가 가장 높은 질병도 말기콩팥병이다. 말기콩팥병이 되면 거품뇨, 부종, 구역구토, 식욕 감퇴, 요량 감소, 쇠약감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를 막기 위한 이상적 치료방법은 ‘신장이식’이지만 신장 공여자가 부족하다 보니 흔히 투석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국내 투석 환자들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집에서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복막투석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병원을 찾아 혈액투석을 받는다.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2023년 말기콩팥병으로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는 83.7%나 된다. 신장이식을 받은 비율은 11.5%였고, 복막투석을 하는 경우는 4.8%에 불과했다. 반면 홍콩은 75% 이상이 복막투석 환자다. 세계적으로도 복막투석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혈액투석은 삶의 질 저하의 원인이 된다. 주 3, 4회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한 번에 4시간가량 투석을 받아야 된다. 병원에 오고 가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대기시간까지 포함해 주 3일, 반나절씩을 병원에서 보내야 된다. 직장인은 결코 쉽지 않다.
반면 복막투석은 집에서 환자가 직접 진행할 수 있다. 병원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방문하면 된다. 복막투석은 방식에 따라 손으로 하는 지속성 외래 복막투석과 기계를 사용하는 자동복막투석으로 나뉜다.
특히 자동복막투석은 매일 밤 집에서 수면 중 1회만 받으면 된다. 직장생활이나 학업 등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병원 방문 횟수가 적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혈액투석에 비해 신장 기능도 오랫동안 유지되고 생존율도 높다. 비용도 혈액투석에 비해 저렴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혈액투석 환자의 진료비는 월평균 257만 원이었지만 복막투석 환자의 진료비는 소모품 구입비를 포함해 월평균 181만 원 정도였다. 건강보험료도 절약돼 정부 입장에서도 훨씬 이득이다.
이런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국내 복막투석 환자 수가 적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복막투석에 대한 정보 및 교육 부족 △인공신장실(혈액투석실) 개설 증가 △복막투석 전담인력(간호사) 부족 △투석 방법 선택을 위한 교육 시행 부족 △복막투석 환자를 위한 정책적 지원 부족 등을 꼽고 있다.
무엇보다 수가의 문제가 크다. 신장내과로 개원하면 복막투석으로는 도저히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 혈액투석 수가는 복막투석의 약 120배이기 때문이다. 개원하는 신장내과 의사는 대부분 혈액투석만 하게 된다. 의대 교수 중심으로 하는 복막투석도 사라질 판이다.
반면 외국은 정부가 발벗고 나서 복막투석 치료를 장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가 ‘미국 국민을 위한 콩팥 건강 증진 계획(AAKHI)’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말기콩팥병 환자의 80%까지 복막투석을 받거나 신장이식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홍콩도 복막투석을 1차 치료방법으로 권장하고 있다. 싱가포르 역시 복막투석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고 복막투석 환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일본은 복막투석과 혈액투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요법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국내에선 정부가 아닌 대한신장학회 중심으로 2033년까지 말기콩팥병 재택치료 비율을 33%까지 올리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제는 보건당국이 화답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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