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6일 조한창 정계선 마은혁 등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에 대해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의 탄핵 경고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 9인 체제 복원을 위한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즉각 한 대행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본회의에 보고했다. 앞서 국회는 재판관 3인 임명동의안을 야당 의원들과 국민의힘 의원 4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과시켰다.
야당의 탄핵 공세에도 ‘여야 합의 우선’을 내세워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한 대행의 태도는 소극적인 미루기를 넘어 적극적인 버티기에 들어선 모양새다. 한 대행이 주장하는 여야 합의는 듣기엔 그럴듯한 얘기지만 그런 합의가 우리 정치권에 기대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희망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런 정치 현실을 한 대행이 모를 리 없는데도 여야 정치권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간 대화와 타협은 거부한 채 야당에 책임을 미루다 결국 극단적 위헌 행위까지 벌인 윤석열 대통령식 행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금의 탄핵 정국은 새삼 ‘정치의 힘’을 강조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탄핵 결정에는 헌법재판관 6인의 찬성이 필요한데 지금 같은 6인 체제에서 1인이라도 반대해 기각된다면 그 결정에 과연 국민이 쉽게 승복할지 의문이다. 헌법재판소의 9인 체제를 갖추는 것은 대한민국의 리더십 공백을 메우기 위해 헌법적 절차를 정상화하는 조치로서 당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다만 대통령 몫도 아닌 국회 몫 헌법재판관 임명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므로 임명권 행사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문가 대다수도, 헌재 사무처장도, 국회 동의를 받은 후보자 3인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여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인사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고, 임명안 표결에는 소수지만 여당 의원도 참여했다.
그런데도 한 대행은 새삼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국회에서 넘어온 양곡법 등 6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처럼 적극적 권한도 이미 행사한 바 있는 한 대행이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여야 합의”를 핑계로 내건 그의 권한 행사 자제론은 결국 책임 회피이자 소수 여당이 반대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안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한 대행에겐 다하지 못한 큰 책임이 남아 있다. 한 대행은 12·3 비상계엄에 반대했다면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과한 바 있다. 당시 대통령의 무도한 행동을 온몸을 던져 막지 못한 책임을 뒤늦게라도 다하려 한다면 헌재의 탄핵 심판에 시간 끌기나 정당성 시비가 끼어들지 않도록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한쪽 논리에 기운 채 줄타기 행보를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한 대행이 할 일은 스스로 밝힌 대로 ‘오로지 국민을 바라보며’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분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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