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밀림 하면 떠오르는 건 울창한 숲이다. 숲 높이가 20∼30m나 될 정도니 식물들엔 천국이 따로 없는 듯하다. 하지만 보기엔 좋아 보여도 막상 살아 보면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데 여기가 그런 곳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엔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추운 겨울도 없고 황무지도 아닌데 무슨 말일까 싶지만, 이곳은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기에 역설적으로 살기가 힘들다. 다른 모든 식물들에도 같은 조건이라 경쟁 환경이 극한 그 자체인 까닭이다. 정글이라는 이름이 그렇듯 치열한 생존 싸움이 1년 내내 벌어진다. 씨앗을 만들어 떨어뜨려도 모든 공간이 꽉 차 있어 자리 잡을 곳이 없고, 울창한 숲 천장으로 인해 낮에도 숲 바닥에 도착하는 햇빛이 2%에 불과해 싹 트기조차 어렵다. 남다른 방법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다.
야자나무는 이런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먼 길 떠나는 자식에게 여비를 두둑하게 챙겨주듯, 세상에서 가장 큰 열매를 만들어 그 안에 영양분을 가득 채운다. 오랜 시간 그늘에서 버틸 수 있어야 어쩌다 불현듯 찾아오는 기회를 낚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숲에서는 가끔 오래된 나무가 수명을 다하거나 비바람에 쓰러질 때가 있는데 이때가 기회다. 갑자기 생긴 널따란 공간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면 숲 바닥의 수많은 씨앗들이 필사적인 삶의 레이스를 시작한다. 열매가 클수록 에너지가 많기에 오래 기다릴 수 있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훨씬 힘 있게 레이스를 펼칠 수 있기에 열매를 크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코코넛이 이 야자나무의 열매인데 크기가 거의 축구공만 하다.
이들 야자나무는 해안에도 사는데 이곳은 경쟁은 없는 대신 열매가 바닷물에 휩쓸려 갈 가능성이 태반이다. 바다를 떠다니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수 장치까지 장착하는데 열매가 크니 최대 3개월까지 버틸 수 있다. 전 세계 열대 지역에서 야자나무를 볼 수 있는 이유다.
동남아시아 열대림에 서식하는 덩굴식물 알소미트라는 치열한 경쟁을 헤쳐 나가는 다른 방법을 개발한 경우다. 자바 오이(Javan Cucumber)로 불리며 박과에 속하지만 오이와는 다른 식물로 역시 커다란 공 같은 열매를 맺는다. 그런 다음, 때가 되면 반쪽을 열어 씨앗들을 내보내는데 아래로 떨어지는 다른 씨앗들과 달리 공중을 멋지게 훨훨 날아다닌다. 씨앗에 아주 얇은 날개를 장착해 멀게는 10km까지 날아가게끔 한 덕분이다. 울창한 숲 천장 아래 공간에선 바람이 불지 않을 때가 많아서다. 이들을 두고 글라이더처럼 날아다닌다고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글라이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울창한 숲과 같은 환경이 되면서 발붙일 곳은 물론이고 능력을 싹틔울 기회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까지 횡행한다. 올해는 극한의 환경이라 할 수 있는 밀림 속에서 남다른 방법을 개발한 덕분에 잘 살아가고 있는 코코넛과 알소미트라처럼 모두 차별화된 나만의 능력을 만드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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