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2024년 증시 ‘밸류업’ 외치다 ‘밸류다운’… 올해는 나아질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1일 23시 18분


‘2891.35’. 작년 7월 11일 코스피가 3,000 선 코앞까지 갔을 때만 해도 한국 증시는 순항할 것처럼 보였다. 이틀 후 미국 필라델피아 유세 중 간발의 차이로 총격을 피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주먹을 쥐고 “파이트!”를 외친 후 코스피는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그의 고관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공약이 한국 경제에 충격을 줄 거란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달 코스피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 16년 만에 6개월 연속 하락해 2399.49로 마감했다.

▷작년 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의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을 밝혔고, 소액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은 이렇게 시동이 걸렸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자동차 수출의 호조와 대기업들의 잇단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상반기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7월의 트럼프 총격 사건, 일본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로 나타난 8월 5일 ‘블랙 먼데이’ 쇼크에 한국 증시는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 주가가 조속히 복원된 것과 달리 한국의 주가 하락엔 브레이크가 없었다. 작년 한 해 증시 성적표는 코스피 ―9.6%, 코스닥 ―21.7%. 큰 폭 상승한 미국 나스닥(31.4%), 일본 닛케이(19.2%), 중국 상하이지수(15.3%)와 정반대의 극심한 ‘밸류 다운’으로 끝났다.

▷하반기 서학개미들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선두주자 미국 엔비디아, 트럼프 당선에 기여해 ‘퍼스트 버디(친구)’가 된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를 향한 ‘투자 이민’을 서둘렀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상식이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대화 주제는 엔비디아, 테슬라 주가가 됐다. 작년 말 한국인의 해외 주식투자 중 미국 비중은 관련 통계 집계 후 처음 95%를 넘었다.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주식 가치는 174조 원에 이른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국가 수장이 제 나라 증시를 향해 던진 폭탄이 됐다. 더 떨어질 게 남았나 싶었는데, 12월 한 달간 코스피는 2.3% 더 내렸다. 연초 대통령이 툭 던졌던 ‘상법 개정’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악화시킬 것이란 기업들의 반발만 불렀다. 주가는 그 나라 정치·경제·사회적 실력의 총화란 명제가 작년처럼 뚜렷이 입증된 예도 드물다. 작년 증시를 망친 문제 중 뭐 하나 시원하게 풀린 것 없이 새해를 맞았다는 게 큰 고민거리다.

#2024년 증시#밸류업#밸류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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