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M 시위 참여 동기 각양각색… 교차 참여가 시위 성공률 높여
주변부 이슈 다루는 시위에선 新전술 등장 확률 15% 높아져
공동위기 앞 연대, 시너지 창출
《다원적 참여의 사회적 잠재력
최근 한국 사회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계속되는 탄핵 시위에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약자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농민,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 서로 다른 배경과 상황에 놓인 개인과 집단이 공동의 목표 아래 결집하는 이 현상은 기존의 사회운동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민주주의 속 시민 참여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단순한 참여자 수의 증가를 넘어 트랙터와 노동조합 깃발뿐 아니라 아이돌 응원봉에 ‘정대만(만화 슬램덩크 등장인물)’, ‘부모님 몰래 서울 온 TK(대구·경북) 장녀 연합’,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깃발처럼 풍자와 해학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위 방식의 등장은 사회운동의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분석한 두 편의 연구를 소개하며, 다원적 참여가 갖는 사회적 의미와 그 잠재력을 탐구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연구(①)는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참여 동기를 교차성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교차성’이란 성별, 인종, 성적 지향, 계급, 장애, 연령, 종교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했을 때 새로운 정체성과 이에 대한 차별이 생겨나는 현상을 뜻한다. 이 연구는 2020년 여름 미국 전역을 휩쓴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 참여자들을 상대로 심층 설문조사를 한 뒤 교차성 개념을 중심으로 동기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이들이 인종 차별 반대라는 단일 이슈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시위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참가자의 39%가 여성 인권, 36%는 성소수자 인권, 29%는 이민자 인권 지지를 표명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는 단일 이슈를 위해 결집하는 기존 시위를 넘어 다양한 이슈가 결합된 ‘교차적 시위’의 등장을 의미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같은 교차적 참여가 시위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다층적 동기를 지닌 다양한 집단의 참여는 시위의 규모와 영향력을 확대하며, 더욱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사회운동의 범위와 파급력을 확장하고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잠재력을 지닌다.
두 번째 연구(연구②)는 1960∼1995년 미 뉴욕타임스(NYT)에 보도된 시위 기사 2만3000여 건을 분석해 시위의 내용과 방식의 상관관계를 살펴봤다. 연구진은 네트워크 분석 기법을 활용해 시위에서 제기된 요구 사항들 간 관계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중 이슈 시위’와 ‘주변부 이슈 시위’를 구분했다. 다중 이슈 시위는 여러 사회운동의 요구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시위를, 주변부 이슈 시위는 기존 사회운동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 시위를 의미한다.
연구 결과는 다중 이슈 시위와 주변부 이슈 시위에서 새로운 시위 전술이 등장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중 이슈 시위에서는 시위 이슈 간 네트워크에서 경로 길이가 한 단위 증가할 때마다, 새로운 전술 조합이 등장할 상대적 확률(승산비·Odds ratio)도 약 12%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부 이슈를 다룬 시위에서도 일반 시위에 비해 새로운 전술이 더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 확인됐다. 특정 시위 이슈의 합계 중심도가 2배가 되면 새로운 전술이 등장할 상대적 확률은 약 15%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운동의 혁신과 발전에 있어 새로운, 혹은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이슈들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두 연구는 사회운동에서 다원적 참여가 새로운 시위 방식의 등장과 혁신을 촉진한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한다.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가진 참여자들의 결집은 확장성을 띤 교차적 시위를 형성하고, 다중 이슈 및 주변부 이슈 시위는 시위 전술의 혁신을 촉진한다. 다양한 집단의 연대는 단순히 참가자 수 증가를 넘어, 사회운동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증대시키는 시너지를 창출한다. 이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시민들이 다양한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집단행동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사회의 핵심적 가치다. 이러한 집단들은 때로는 ‘갈라치기’와 같은 권력의 개입으로 인해 분열되고 약화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연구에서 나타난 시위 양상은 다원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공동의 위기에 맞서 연대하는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교차적 동기를 공유하고, 주변부 이슈를 다루는 시위에서 새로운 시위 문화가 창조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계엄 수사의 더딘 진행으로 정치·경제적 혼란이 길어지며 추위 속에서도 많은 국민들이 연말연시에 거리로 나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하루빨리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수사와 탄핵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처럼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해서 열어 나가길 바란다.
연구①: Fisher, Dana R., and Stella M. Rouse. “Intersectionality within the racial justice movement in the summer of 2020.”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9.30 (2022): e2118525119.
연구②: Wang, Dan J., and Sarah A. Soule. “Tactical innovation in social movements: The effects of peripheral and multi-issue protest.”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81.3 (2016): 517-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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