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은주]국민의 뜻은 언제 드러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일 23시 15분


“내 의견 동의 많을 것” 믿는 허위합의효과
극단적 소수와 대거리 싫어 다수는 침묵
‘오물’ 치워야 할 절박감 들면 뜻 명확해져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초현실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고,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정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한 달여를 보내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는 ‘국민의 뜻’이 아닐까 싶다. 비상계엄으로 나라를 진창으로 밀어넣은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것도 국민의 뜻, 비상사태를 속히 수습하고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필요한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하는 것도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

무릇 국회의원이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니 국민의 뜻을 항시 최우선으로 두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실제로 헌법 제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국회의원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본인이 속한 지역구나 정당의 이해득실을 초월해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국민투표나 선거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제외하면, 사실 일반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기관에서 수행하는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세우기도 하고(그러다 이를 이용하는 사기꾼들에게 농락당하기도 하고),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뉴스 댓글 등에서 표출되는 의견들을 눈치껏 살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왜곡된 여론 지각을 유발하는 심리적 편향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스와 동료들이 명명한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 태도, 행동이 정상적이거나 일반적이라고 간주하고 실제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을 가리킨다. 예컨대 특정 상황에서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본인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뿐 아니라 본인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이고, 이상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탕수육 소스 ‘부먹파’와 ‘찍먹파’의 반목을 생각해 보면 된다). 사안이 중차대할수록, 본인의 신념에 확신을 가질수록 이러한 편향은 더 강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자기중심적 판단은 왜 발생할까? 먼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신념과 행동을 공유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 아니던가. 유유상종의 원칙은 물리적 세계의 한계를 넘어 온라인 공간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해서, 어쩌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페이스북 친구가 있다면 슬그머니 ‘언팔’하면 그뿐이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된다. 한편 다른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믿는 것은 자존감을 지키는 데도 유용하다. ‘대개의 경우 다수의 의견이 옳다’는 경험칙에 동의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현명한 나’라는 자아 개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편향이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딕슨과 동료들이 2024년 국제학술지 휴먼 커뮤니케이션 리서치에 출판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어린이 백신의 안전성과 의무화에 동의했지만 정작 다른 공화당원들은 별로 백신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반면 백신 반대자들은 실제로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입장이 공화당 전체의 의견과 합치한다고 믿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백신 반대 의견이 과잉 대표됐기 때문인데, 흥미롭게도 백신 지지자들은 본인들이 소수라고 믿기 때문에 공개적 의견 표명을 꺼리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정보환경을 주도하고 있는 백신 반대자들과 딱히 갈등을 빚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성맞은 소수와 대거리하기 싫어서, 달리 말하자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셈이다.

하지만 사방이 오물 천지가 되고 그 냄새가 너무 심해져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되면, 그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이들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오물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치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뜻은 그때 비로소 분명히 드러난다.

#국민의 뜻#여론조사#심리적 편향#허위 합의 효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