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장군’ 전기를 다시 살펴봤다. 1952년 ‘부산 정치파동’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군부대 동원 명령을 거부한 사례가 궁금해서다. 1952년 5월 이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을 관철시키고자 경남과 전남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종찬 장군은 이 대통령의 병력출동 지시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의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라는 육군본부 훈령 217호를 하달했다. 이 일로 그는 참모총장직에서 해임됐지만 훗날 ‘참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계엄 사태를 두고 위헌·위법적 명령임이 분명함에도 과거 이종찬 장군처럼 명령을 거부한 군인이 왜 단 한 명도 없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 우리 군 지휘부는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등 한국 군대의 아픈 역사적 경험을 딛고 일어선 세대다. 그런 만큼 또다시 그런 상황에 내몰렸을 때 깨어 있는 분별력과 용기를 가진 군인, 특히 그런 장성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런 이들이 없었다는 사실은 근본적인 원인을 고민하게 만든다.
군, 정권에 순응하는 집단 돼버려
위법한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민군 관계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 석학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전문 직업군대를 가진 현대에서는 민군 관계에 있어 객관적 문민통제만이 유일한 형태의 민주적 통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객관적 문민통제는 군을 전문화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되, 군대가 군대 이상의 문제에는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들어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한다는 것이다.
이와 상대되는 개념인 주관적 문민통제는 민간 집단의 권력은 극대화하는 반면 군부 권력은 최소화해 문민통제를 이룬다는 개념이다. 주관적 문민통제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적 우호 관계에 있는 상위 계급 장군들을 주요 보직에 임명해 군대를 통제한다.
1993년 이후 한국의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주관적 문민통제에 가까웠다. 과거 군부 쿠데타 경험 탓에 믿을 수 있는 군 수뇌부를 통한 안전한 군부 통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대통령-국방장관 군 인사권 독점 견제해야
반면 군인들은 문민으로부터 자율성을 존중받을 정도의 전문직업군으로서 군사적 전문성이나 행동 양식, 조직 문화를 갖추는 데 많이 부족했다. 결국 군은 객관적 문민통제의 한 당사자가 아니라 정권에 순응하는 집단이 돼버렸다는 뼈아픈 평가도 나온다.
이처럼 공손하고 순응적인 민군 관계는 ‘12·3 비상계엄’ 시 군이 위헌적 명령에 별다른 저항 없이 동원되는 원인이 됐다. 정치 권력과 일부 사적 연고 관계 또는 인사적 수혜-보은 관계에 있거나 인사 유혹에 넘어간 군 장성들이 계엄 모의 및 실행에 순응한 형이다.
꽤 오래전부터 군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민군 관계, 군의 정치화 현상을 공론화해 사회적 컨센서스를 이뤄내야 한다. 무엇보다 군인들은 헌법적 가치를 수호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전문직업군으로서 군사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물론 군대다운 행동 양식을 갖춘 군대화(Militarizing)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지나치게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군 인사권이 견제되도록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다. 다만 초가삼간을 태우는 식의 처방으로 국민이 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다시 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때까지 또 얼마의 시간을 견뎌야 할까. 이를 또다시 견뎌야 하는 후배 군인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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