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제조 회사를 운영 중인 한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는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상속세 부담, 최저임금 인상, 제조업 기피로 인한 구인난 등 여러 이유로 제조업 경영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는데 이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나만 해도 사업을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있으니 물려받으려는 자녀가 있지만, 주변에는 ‘돈도 많이 못 버는 힘든 사업 물려주지 말고 팔아서 돈으로 달라’는 자식들 때문에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는 대표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본보가 지난달 게재한 ‘성장판 닫힌 제조업 생태계’ 시리즈 취재차 만난 제조업 대표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1970년대부터 국내에서 제조업을 해온 한 대표는 한국 외에 인도네시아에도 공장을 갖고 있다. 그는 “해외로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라 (한국의 제조업 여건이 좋지 않아) 쫓겨난 셈”이라며 “인도네시아에 나와 있는 국내 중소 제조업 대표들 상당수가 다시는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했다.
중소 제조업 1세대 중에서는 힘든 여건 속에서도 본인이 창업한 회사를 포기하기 어려워 어떻게든 사업을 해 나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본인이 창업하지 않은 2, 3세대는 다르다. 이들 가운데는 국내 제조업 환경이 나빠지자 더 이상 가업을 승계하지 않고 폐업해 버리거나 사모펀드 등에 파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례로 경기 북부 섬유조합의 공장주 2세 모임 회원 수는 10년 전 60명에서 현재 12명으로 줄었다.
중기중앙회의 ‘2024년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자녀에게 가업을 승계할 계획이 없거나 결정하지 못한 이유로 가장 많은 답변을 받은 것은 ‘자녀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38.8%)가 차지했다. 두 번째는 ‘자녀에게 기업 운영이라는 무거운 책무를 주기 싫어서’(26.9%)였다.
중소기업 창업 1세대의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어서 현재 중기 CEO의 23.8%가 60대 이상이고 70대 이상도 2만5000명이나 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중기의 원활한 가업 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10년간 폐업 등으로 소멸되는 사업체 수는 약 32만 개, 실직자 수는 약 300만 명으로 예상했다.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예상되는 전망치다.
현재 중소기업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상승한 인건비에 주 52시간 연장근로제와 외국인 근로자 고용 관련 등의 노동 규제, 가업 승계를 힘들게 하는 과도한 상속세 등을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7.7%에 이른다. 이들이 경쟁력을 상실하면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는 더 심화될 수 있다. 이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을 그들만의 과제로 남겨두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나마 남아 있는 중소 제조업체들마저 줄줄이 한국을 떠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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