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윤종]참사 전 신호는 항상 먼저 나타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3일 23시 21분


김윤종 사회부장
김윤종 사회부장
지난달 1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린 ‘공항 조류충돌예방위원회’. 한 참석자는 “비행기가 고어라운드(go-around·복행)하다가 새 떼와 자주 마주친다.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불과 10일 뒤인 29일 발생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를 예언한 듯한 경고였다. 사고가 난 제주항공 7C2216편은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복행한 후 동체 착륙을 시도했고, 방향 안내 시설인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둔덕에 충돌하면서 폭발했다. 이 과정에서 승객 179명이 사망했다. 장례식장과 공항 참사 현장 등에선 유족들의 눈물과 절규가 넘쳐났다. 이를 보도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사고로 자녀 부모를 잃은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예견된 인재’ 지적, 무안 참사 때도 나와

슬픔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유족들도 많았다. 여러 징후가 사전에 나타났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류충돌예방위에선 관리 인력 부족, 경보기 문제를 비롯해 조류 포획 등이 1년 전보다 1344마리나 줄었다는 구체적 수치까지 거론됐다. 사고 비행기는 참사 직전 이틀 동안 5개국을 오가며 13차례 운항을 했다. 무리한 운영이란 지적이 나왔다. 높이 2m의 무안공항 둔덕은 콘크리트로 설치됐다. 활주로 주변 설치물은 비행기 이탈을 대비해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제작하란 정부 고시 등이 지켜지지 않았다. 조류 충돌 경고에 대응하고, 로컬라이저를 규정대로 만들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형사고 직전엔 위험신호가 나온다. 지난해 6월 23명이 사망한 경기 화성 리튬전지 공장 화재의 경우 참사가 나기 불과 이틀 전 배터리 온도 급상승으로 인한 화재가 공장에서 발생했다. 불이 번지지 않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7명이 사망한 경기 부천 모텔 화재(8월)도 막을 수 있었다. 화재는 노후 전선에서 비롯됐는데, 에어컨 교체 공사를 하던 기사는 ‘전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68세 남성의 차량 역주행으로 9명이 사망한 서울 시청역 참사 역시 고령운전 사고가 급증하면서 대책 논의가 시급하다는 경고가 나오던 중 발생했다.

대형 사고 전조 현상, 제대로 직시해야

참사는 불운 속에서 갑작스레 발생하는 듯 보이지만, 작은 문제들이 쌓인 후 임계점에 다다르면 터진다. 미국의 한 보험회사에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재해 사례를 토대로 중상자가 1명 나오기 전에 같은 이유로 경상자가 29명, 부상을 당할 뻔한 사람이 300명이 생긴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널리 알려진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면서도 사고 전 나타나는 신호를 무심하게 넘기고, 참사로 이어진 뒤에야 후회한다. 미국 국토안보부(DHS) 역시 같은 문제 인식하에 20년간 발생한 테러, 대형 사고 등을 연구해 ‘왜 참사와 재난이 반복되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형 사고는 발생 확률이나 빈도가 낮다 보니, 사고 발생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정부나 조직의 대응이 소홀해졌다. 시민들 역시 사회 안전망이 잘 작동될 것이란 믿음은 지나치게 큰 반면, 참사가 닥칠 가능성은 과소평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역시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옅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든지 유사한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5년간 전국 공항에서 버드 스트라이크가 559건이나 발생했다. 국내 공항 여러 곳에 무안공항과 유사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대형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전조 현상에 적극 대응하면 빈도나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 4명 중 1명(25.6%)은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2년 전 21.7%보다 높아졌다. 올해는 이 수치가 줄어들 수 있을까.

#제주항공 참사#조류충돌#비행기 사고#안전 문제#경고 신호#사회 안전망#하인리히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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