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새해 계획 짤 때 필요한 세 가지[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5일 23시 04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새로운 해가 밝았다. 내게 주어진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퇴직하고 나서 어려워진 것이 있다면 바로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직장인 시절에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지만 있어도 충분했는데, 퇴직 후에는 참으로 막막한 일이 되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퇴직자 신분에 새해 계획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찰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방법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돌이켜 보니 누구도 퇴직 후 계획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준 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 해가 시작되면 ‘돈 벌자’ ‘일하자’는 다짐만 반복해 왔다. 결실 없이 몇 년을 보내고 나서야 퇴직자의 연초 계획은 직장인과는 달리 세 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 막연한 목표보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나는 퇴직 후에 ‘강의를 하겠다’라는 목표를 세웠다. 저명한 강연자들이 큰 무대에 올라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광경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회사에서 발표 잘한다는 칭찬도 곧잘 들었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호기롭게 퇴직한 이듬해에 ‘명강사’라는 새해 목표를 다졌고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이루리라고 결심하였다. 하지만 속상하게도 아직까지 그 꿈은 미완성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대중 앞에 설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강사는 말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우선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독창적인 콘텐츠가 필요했다. 수십 년의 직장생활 경험이 전부인 나로서는 업무 외의 여타 내용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자격부터 갖춰야 한다는 점을 놓친 것이다. 내가 몰입해야 할 대상은 최종 고지가 아니라 상당량의 공부와 주제 개발 등 그곳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노력들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내게 적절했던 계획은 ‘하고 싶은 강의와 관련된 책 10권 읽기’였다.

둘째, 거창한 결과가 아닌 작은 성과를 지향해야 한다. 유명 강사의 길이 멀게 느껴지자 보다 익숙한 일을 해야겠다고 방향을 수정했다. 그래서 찾은 직업이 사업가였다. 나 스스로 강사가 되지 못하면 좋은 강사를 채용해 교육회사를 운영하면 되겠다 싶었다. 관리 쪽은 오래 해왔던 영역이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즉시 ‘5년 뒤 업계 3위권 진입’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세우고 전력을 다했다. 그렇지만 이 역시 결말이 좋지 못했다. 현재 나는 성공한 사업가이기는커녕 사업 실패로 떠안은 손실을 메꾸느라 진땀만 흘리고 있다.

이번에는 뭔가 대단해 보이는 결과를 원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회사를 키우려면 다각화가 최선이라고 판단해 문어발식으로 분야를 확장한 게 패착이었다. 영업 개시와 동시에 강사 양성뿐 아니라 커리큘럼 개발, 관련 상품 판매 등 연관성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손을 댔다. 이는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자원만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대신 ‘일주일에 고객 1명 모시기’를 목표로 전단이라도 돌렸다면 2년이면 100명이 넘는 교육생을 배출한 알찬 기업체의 대표가 됐을 것이다.

셋째,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앞서 말한 두 차례 좌절의 이면에는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감정이 자리했다. 솔직히 퇴직 후 내가 그렸던 목표는 오롯이 내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남들이 어찌 볼까 걱정이 많았다. 비록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나라는 존재가 변함없이 건재함을 확인받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외부의 평가에 집착하는 태도는 성급함을 낳아 내리 패배감과 자괴감을 줬다.

주변을 보면 퇴직 후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한때 함께했던 직장 동료들은 다양한 길을 걷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매주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기도 하며,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기도 한다. 그들은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거나, 산 정상에서 성취감을 얻거나, 학위라는 소망을 이루며 행복해한다. 반면에 나는 나를 증명하려는 욕심에만 사로잡혀 살았던 듯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며 내실을 다졌다면 어땠을지 뒤늦게 생각해 본다.

여전히 나는 완벽하지 못하다. 하나하나 직접 하려니 매사에 실수투성이다. 그래도 한 가지 맺은 열매는 있다. 소박하나마 내가 품어 왔던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고 관심사를 영상으로 만들다 보니, 급격한 성과는 없더라도 어제의 나보다 성장하면서 두 번째 인생이 완성돼 가는 기분이다. 퇴직 후 5년이 지나고 비로소 깨닫는다. 퇴직 후 삶에 정답은 없지만, 퇴직 후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것이 어쩌면 퇴직이 주는 숨겨진 진짜 선물일지도 모른다.

최근 ‘원포인트업(One Point Up)’이 트렌드로 떠올랐다고 한다. 도달 가능한 한 가지 목표를 세워 실천함으로써 나다움을 잃지 않는 새로운 자기계발 패러다임을 뜻한다. 이번 새해 계획은 원포인트업 식으로 세워 보시면 어떨까. 을사년 한 해 모든 분들의 푸르른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퇴직#새해#계획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