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부자가 8.7년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5일 23시 18분


건강은 개인 하기 나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미국은 인종에 따라 기대수명 차이가 크다. 아시아인이 84.5세, 백인 77.5세, 흑인 72.8세, 원주민 67.9세 순이다. 영국에선 부촌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난한 동네 아이보다 12년 더 오래 산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부자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윤석준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연구팀이 2008∼2020년 건강보험 데이터를 이용해 소득 수준(5개 등급)에 따른 기대수명을 분석한 결과 2020년 최상위 소득계층이 87.4년으로 최저 소득층보다 7.9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별 이상 없이 생활하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 격차는 더 컸다. 최상위 계층이 74.9년으로 최저소득 계층보다 8.7년 더 길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모두 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가 해마다 더 벌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건강과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경제력, 주거 환경, 식습관, 사회관계 등이 꼽히는데 특히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는 큰 병원과 실력 있는 의사들이 많다. ‘종합병원에 1시간 30분 이내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은 의료 여건이 좋은 곳은 0%이지만 나쁜 곳은 42%나 된다. ‘지역응급의료센터에 30분 이내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은 지역별로 0∼57%로 격차가 더 크다. 이 때문에 소득 수준별로 응급 상황이나 급성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 차이가 크게 난다. 제때 치료를 받았더라면 피할 수 있는 사망률(회피가능사망률)의 경우 최저소득 계층이 최고층보다 1.4배 더 높다.

▷부자들은 급성 질환뿐만 아니라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만성 질환을 앓는 비율도 낮다. 많이 벌수록 술과 담배를 덜하고, 적당한 유산소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으로 건강과 비만을 관리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질병관리청 2023 국민건강영향조사). 건강은 대물림된다. 유전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생활 환경과 습관을 그대로 물려받아 부모 세대 건강 격차가 자녀 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부자들은 일반인보다 아침 식사를 하는 비율이 높고, 종이신문과 연간 10권의 책을 읽으며,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횟수도 많았다(‘2024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 아침을 먹으면 폭식을 예방하고, 하루 30분 이상 읽으면 사망할 확률이 줄어들며, 가족 간 유대는 심리적 안정에 필수 요소다. 평범해 보이는 이런 장수 생활 습관도 먹고살기 힘든 이들에겐 사치일 수 있다. 의료 불평등 못지않게 경제 양극화 완화에 힘써야 건강 불평등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건강#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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