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내 재판도 조속히”… 이재명은 이런 용기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5일 23시 21분


尹 탄핵과 李 재판은 차원이 다른 사안
연계시킬 사안 아닌데 득실 꼼수만 난무
李, ‘생존력’ 넘어 ‘지도자다움’ 보이려면
“출마자격 논란 정면돌파” 당당히 밝혀야

정용관 논설실장
정용관 논설실장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탄핵 심판과 수사는 국체의 문제이고 헌정(憲政)의 문제다. 민주공화정의 정체성 및 헌정 질서의 훼손과 관련된 국가적 사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등 사법리스크는 유력한 대선주자의 형사(刑事) 문제이자 출마 자격 문제다.

그런데 헌정 문제와 한 개인의 형사 문제가 한데 꼬였다. 급(級)이 다른 두 문제가 뒤엉킨 것은 물론이고 탄핵 선고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그 실질적 수혜자가 이 대표가 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헌 문란이란 본질은 사라지고 탄핵 심판 속도전이네, 재판 지연이네 하며 대선 유불리에 따른 아전인수 격 ‘시간표 싸움’이 벌어지는 게 한심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윤 대통령 탄핵은 탄핵대로, 이 대표 재판은 재판대로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각각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미래 권력의 향배는 탄핵 심판 못지않게 그 자체로 중대한 일이다. 탄핵 심리는 속히 진행되는데 이 대표 재판은 한없이 늦어지면 정치적으로 형평성 논란이 벌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필자가 지난해 말 ‘대선 시간표에만 매달리다간 심판의 문에 들어설 것’이라는 칼럼을 쓴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권력은 진공(眞空)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 미래 권력이 누구의 몫인지는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국가 혼란 해소와 뒤엉키면 나라 전체가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 불행히도 그 뒤 전개된 상황은 예견됐던 대로다. 미증유의 국가 혼란은 수습의 길을 걷기는커녕 2차 내전(內戰)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탄핵이든 재판이든 각각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사법 판단 절차를 존중할 생각은 않고 다들 권력 유지, 혹은 탈환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집권 세력의 책임이 훨씬 더 무겁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점에서 윤 대통령 측이 이 대표와 조국, 윤미향 등의 재판 지연 사례를 거론하며 “방어권 제약” 운운하는 것은 옹색한 논리다. “비상계엄은 헌법적 결단” 운운하더니 그런 형사사건들과 비교하며 탄핵 심판을 끌려 하나. 4월 헌법재판관 2명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심산인지는 모르겠으나 좀스럽게 비칠 뿐이다. 어느 보수 논객의 힐난대로 ‘군대 안 간 군 통수권자의 병정놀이’가 아닌 ‘헌법적 결단’이라면 자기 입장을 당당히 밝히고 속히 판단을 받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 대표가 탄핵 뒤에 숨어 떨어지는 과일만 받아먹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 또한 그 자신의 권력 쟁취 성공 여부를 떠나 공동체를 생각한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 대표는 여러 신년 여론조사에서 보듯 현시점에서 미래 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이다. 대선 출마 자격 문제를 온전히 정리하지 않은 채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것은 국민에게 또 다른 정치적 불확실성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숱한 사법의 위기를 겪으며 끈질긴 생존력, 생명력을 입증해 왔지만 비토론도 상당하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다움’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어서가 아닐까 한다. 국난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사적 이익만 모색한다면 중간 지대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이참에 자신의 출마 자격 문제를 조속히 판단해 달라고 공개 요청하고 이를 위해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재판을 받겠다고 밝히는 건 어떤가. 2심에서 둘 다 무죄면 대선에 도전하고, 그게 아니라면 대선에 나서지 않을 각오가 돼 있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대권을 잡으려는 게 자신의 권력욕 실현 때문이 아니라 공적(公的) 사명감 때문이라면 말이다. 과연 그런 용기가 있을까.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년사에서 두 대목이 눈길을 끈다. “국가 기관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 “사법부의 본질적인 사명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재판관 임명 문제로 정치에 농락당한 8인의 헌법재판관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야만의 정치’에 그 어느 때보다 추상같은 사법의 시간이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 누구든 법의 판단을 정치적 꼼수로 요리조리 피하거나 멋대로 재단하려 했다간 진짜 ‘벼락 맞은 고목’ 신세가 될 수 있다.

#이재명#용기#윤석열#불법 계엄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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