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돈도 사고파는 상품이다. 그런데 이 돈이라는 상품의 가격, 즉 원화로 달러를 사는 가격인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뒤 치솟던 달러 값이,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더욱 급등해 지난해 1달러당 1472원으로 마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기억이 스멀스멀 소환된다. 연말 종가 기준으로 환율이 1695원을 찍었던 1997년 이후 우리는 다시 한번 위기에 놓였다.
환율이 오르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원화를 더 주고 달러를 사야 하니 해외여행이 힘들어지고, 원자재와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가 오른다. 개인이 살기 팍팍해지고 회사의 비용 부담도 증가한다. 정부가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자칫 외환보유액을 투기세력의 밥상으로 내놓는 꼴이 될 수도 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외환 투기를 이야기할 때 조지 소로스(95)를 빼놓을 수 없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로스는 나치를 겪고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정경대(LSE)의 칼 포퍼 밑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소로스는 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어 했지만 부득이 금융업으로 방향을 돌려 헤지펀드 ‘퀀텀펀드’를 설립했다. 이후 경제 동향, 금리, 통화 등 거시경제 분석을 토대로 단기간에 막대한 자금을 퍼붓는 투기 전략을 성공시켜 전설이 됐다.
1992년 9월, 소로스는 영국의 경제 상태와 환율 정책을 분석해 약점을 찾았다. 당시 영국은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 가입해 환율 변동을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영국 중앙은행(BoE)이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를 사고팔며 환율을 관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990년 통일 이후 독일은 동독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는데, 풀린 돈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금리를 계속 올렸다. 금리가 높으니 유럽의 돈이 독일로 몰려 마르크화의 가치가 올라갔다. 영국은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금리를 올리거나 파운드화를 매입해야 했다. 소로스는 영국 경제가 허약해서 파운드화가 버틸 수 없음을 확신했다.
소로스는 무려 100억 달러 상당의 파운드화를 빌려 시장에 팔아치웠다. 이를 공매도라고 하는데,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을 먼저 빌려서 팔았다가, 나중에 실제로 가격이 떨어졌을 때 싼값에 사서 되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남긴다. 소로스가 한 것은 파운드화의 하락을 확신하고 대규모로 빌려서 시장에 팔겠다고 내놓은 것이다.
파운드화가 폭락할 위기에 놓이자 BoE는 금리를 크게 올리고 외환을 팔아 수십억 파운드를 사들이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소로스와 그를 따르는 투자자들의 파운드화 공매도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ERM을 탈퇴하며 고정환율 체제를 포기했다. 그 결과 파운드화 가치는 크게 떨어지고 소로스는 싼값에 파운드화를 사서 갚음으로써 단숨에 10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얻었다.
돈의 가격인 환율은 경제 상황, 정치 이슈에 민감하다. 지금 전 세계가 우리의 정치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무책임과 혼란, 비전의 부재가 원화 값을 떨어뜨리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화 자산을 팔고 달러 자산을 사려는 수요가 가속화되면 이는 환율을 더욱 높이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처지가 아닌 진정 국익을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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