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재명]정치 과잉 빠진 한국 경제… 반도체 지원부터 풀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6일 23시 12분


박재명 산업1부 차장
박재명 산업1부 차장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인들은 ‘정치 과잉’ 상태에 빠졌다. 국정 최고 책임자 한 명이 결정한 정치적 이슈가 5000만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180도 바꿀 뻔했다. 그 이후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두고 나라가 찬반으로 갈라졌다. 비상계엄에서 탄핵, 대통령 체포 시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많은 국민을 시도 때도 없이 정치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정치 중독자’로 만들었다.

문제는 국회마저 정치 과잉 상태란 점이다. 국회는 정치인들이 모인 집단이지만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필요한 법안을 처리하는 국가기관이다. 정치적 혼란 때문에 법안 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게 직무 유기다. 하지만 지난 연말 주요 경제법안의 처리 누락을 보면 국회가 정쟁(政爭)에 몰두하다 의무 이행을 방기했다는 것이 확연해 보인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 특별법(반도체법) 통과 불발이다. 그동안 미국, 대만, 일본의 반도체 기업은 국가에서 조 단위의 보조금을 받아 왔다. 반면 한국 반도체 기업은 직접 보조금 없이, 많아야 일본 기업의 10분의 1 수준의 세액공제만 받았다. 반도체 경기가 하강하는 ‘반도체 겨울’을 앞두고 처음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반도체법의 골자다.

이 법은 여야 이견 없이 발의됐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6일 열린 국회 소위원회 심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같은 날 여야는 대통령 탄핵을 심리할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해 의원총회와 국회 본회의를 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지난해 연말 대형 정치 이슈에 막힌 주요 경제법안이 대한상공회의소 추산으로 최소 12건에 달한다. 국가기간 전력망,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과 관련된 법안들이다.

반도체법 통과가 시기를 다소 늦춰도 괜찮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올 1분기(1∼3월) 반도체 D램 가격이 5∼10%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 4분기(9∼12월) 30% 이상 떨어진 품목이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하락 예상치만 그 정도다.

가격 하락의 주요 이유는 스마트폰과 PC 수요 위축, 그리고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급속한 공급 확대가 꼽힌다. 이 중 방점은 ‘중국의 반도체 공급 증가’에 찍혀 있다. 이미 석유화학과 철강 등의 업종에서는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치킨 게임’을 시작한 이후 한국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 속속 사업을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역시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 업계가 한목소리로 우려하는 점이다.

경제계는 1월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혼란스러웠던 지난해 말 지연된 각종 경제법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뜻이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경제가 정치적 프로세스에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얘기다. 여야가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1월 임시국회에서 당장 시급한 경제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정치와 관계없이 안정적이고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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