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을 을씨년스럽게 열며[임용한의 전쟁사]〈348〉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6일 23시 03분


올해는 을사년이다. 작년에 을사사화, 을사보호조약을 언급하며 정치적으로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하는 괴담이 돌더니 계엄 사건이 터졌다. 올 상반기는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간이 펼쳐지게 됐다. 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치·경제적 영향은 오래갈 것 같다. 오래간다기보다는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혹은 고통스러운 방향이든 중요한 변화의 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필 뱀의 해이다 보니 미로 같은 세상과 끝을 알 수 없는 결과가 더욱 상징적이다. 우리는 뱀의 몸통과 같은 구불구불한 질곡을 지나 밝은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뱀의 입으로 들어가는 중일까?

뱀은 우리 문화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동물이다. 서구 문명의 절반인 기독교 문명에서도 뱀은 사악한 존재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 헬레니즘 문화에서 뱀은 의외로 존중을 받는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신성한 뱀이 새장 안에서 살았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은 뱀이 감겨 있는 지팡이이다. 구급대의 표식이 된 헤르메스의 지팡이 케리케이온도 두 마리의 뱀이 감고 있다. 아테네 여신상의 발아래 청동뱀이 놓여 있기도 하고, 폼페이 로마 주택의 부엌 벽화에는 빠짐없이 뱀이 그려져 있다.

이중적인 의미도 있다. 뱀의 지혜는 교활함을 뜻한다. 갈라진 혀는 정치인과 사기꾼의 혀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교활함을 미워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려면 교활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의 교활함은 악이고 우리의 교활함은 능력이다. 갈라진 혀와 내로남불은 이젠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가 되었다.

뱀과 을사라는 단어에는 죄가 없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생각과 손이 만든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거리에서 한탄하던 상황이 우리 시대에도 펼쳐지고 말았다. 이 좁은 협로를 뱀처럼 뚫고 나가는 2025년이 되길 바란다.

#을사년#뱀의 해#문화적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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