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체포만 경찰에”… 존재감 보이려다 헛발질만 해대는 공수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6일 23시 27분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6일 오전 공수처 청사가 있는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과천=뉴시스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에 넘기려다 경찰의 거부로 철회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에 “체포영장 집행을 위임한다”는 공문을 보냈다가 경찰이 “위법 소지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자 공수처가 물러선 것이다. 6일까지였던 1차 영장 유효기간 내에 윤 대통령 체포는 못 한 채 공수처의 일방적 떠넘기기로 공연히 혼선만 키운 결과가 됐다.

수사 초반 윤 대통령 수사를 놓고 검찰, 경찰, 공수처 간에 물밑 경쟁이 벌어졌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기관이 공수처였다. 윤 대통령을 출국금지한 데 이어 검경을 상대로 이첩 요청권까지 행사해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을 가져온 만큼 그에 걸맞은 결과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공수처는 이달 3일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하다 대통령경호처의 반발에 부딪혀 5시간 반 만에 물러선 뒤 이틀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영장 시한 막바지에 불쑥 경찰에 ‘체포를 일임한다’는 공문을 보내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윤 대통령 체포는 경찰이 하고, 신병이 확보되면 넘겨받아 공수처가 조사하겠다는 얘기다. 법리적으로 공수처 검사가 경찰에 체포영장 집행을 지휘할 수 없다는 견해가 많은데도, 공수처는 경찰과 사전협의조차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 수사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려다 체포영장 집행 등에서 능력에 한계를 느끼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경찰에 떠넘기려 한 것 아닌가. 경찰 내에서 “공수처의 수준에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는 등의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근본적 이유는 물론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윤 대통령이 거부하고 경호처가 물리력을 동원해 막아섰기 때문이다. 검사와 수사관을 합쳐 50명 안팎에 불과한 공수처가 수백 명의 인력과 장비를 갖춘 경호처를 상대하는 데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만큼 경찰과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치밀하게 영장을 집행했어야 했는데 어설프게 밀고 들어갔다 빈손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계속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까지 보이게 된다면 공수처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될 것이다.


#윤석열#체포영장#수사권#공수처#경호처#경찰#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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