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을 극복하는 한국 민초의 저력[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39〉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7일 22시 54분


“조선이란 나라는…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우민호 ‘하얼빈’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우민호 감독의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는 조선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조선을 식민화하려는 치밀한 계획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안중근(현빈)을 위시한 독립투사들이 유일한 불안 요소라고 토로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과정을 담은 하얼빈은, 그것을 안중근 개인의 영웅적 서사로만 그리지 않는다. 나라가 국난을 맞았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섰던 민초들의 저력. 안중근 의사는 그 질기게 버텨내는 민초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국난을 극복한 힘은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의병들의 봉기였고, 일제강점기에도 피로 뜻을 함께한 독립투사들과 의병들의 투쟁이 국권을 회복할 수 있었던 저력이었다. 민초들의 저력은 이후에도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에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또 국정농단 사건에는 촛불시위로, 나아가 최근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는 응원봉을 들고 나서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강 위를 포기하지 않고 건너는 안중근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하얼빈은, 결국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사형대에 오른 그의 죽음과 동시에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나무들을 담아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것 같던 동토에 뿌린 뜨거운 피가 다시 피워내는 나무들을 은유한 연출이랄까. 이것이 민초들이 가진 저력이고, 그 힘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우민호#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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