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담그기’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 등재를 축하하며[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9일 22시 57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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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우리나라의 ‘장 담그기’ 문화가 지난해 12월 3일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9차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위원회 회의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우리나라 음식문화로는 김장 문화에 이어 두 번째다. K푸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나에게는 매우 기쁘고 축하할 일이다. 이 등재를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장(醬)’은 수천 년 전부터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우리 민족이 고안해 낸 음식이다. 장 담그기는 콩을 발효시키는 것으로,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다. 앞선 칼럼에서 청국장을 포함한 장의 뿌리와 의미를 콩의 원산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곁들여 소개한 바 있다. 늦가을에 타작해 거둬들인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이를 깔아 놓은 지푸라기 위에 놓으면 며칠이 지나면 마른다. 말린 메주를 긴 짚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새끼를 꼬아 메주의 네 측면을 세로로 묶어 걸고 처마 밑에 매달아 두 달 정도 둔다. 메주가 마르기 시작하면 마른 부분이 수축돼 금이 가면서 표면적이 늘어난다.

이렇게 늘어난 표면에서 표면 발효가 일어나 메주가 훨씬 잘 뜨기 시작한다. 지푸라기에서 나오는 바실루스균과 처마 밑 공기 중에 있는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가 발효에 있어 큰 역할을 한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맹추위도 어느 정도 지나고 밤과 낮의 온도 차도 크게 나지 않을 때 잘 뜨인 메주를 꺼내 독에 넣고 적당한 소금(천일염)을 뿌려 장을 담근다. 담근 장을 두서너 달 두면 액상발효가 일어나고 발효미생물에서 다양한 효소가 나와 펩타이드나 아미노산, 이소플라보노이드 등을 만들면서 맛있는 장이 된다.

보통 정월에 장을 담근다. 이를 정월장이라 한다. 중부나 북부는 좀 늦는데 정월을 지나 담그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날씨가 너무 추우면 발효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을 우려가 있고, 너무 더워지면 발효균보다 부패균이 더 자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금의 양도 장의 품질에 결정적이다. 너무 적으면 쉽게 쉬어버리고 메주가 아래로 가라앉아 서로 엉겨 붙어 효소작용이 골고루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 짜면 메주가 위로 떠서 엉키고 원하는 효소작용이나 발효가 일어날 수 없다. 우리 현명한 조상들은 이 소금 농도를 달걀을 띄워 맞추기도 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으니 2000년 동안 지켜온 우리 전통 장 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먼저 ‘장의 날’을 제정해 장 담그는 문화를 기념하고, 장을 담가 보는 행사를 했으면 한다. 우리 조상들은 실질적으로 정월 대보름이 지난 ‘말날’(午日, 말의 날)에 장을 담갔다. 남쪽 지방에서는 대보름 지나 첫 번째나 두 번째 말날에, 중부나 북부지방은 두 번째나 세 번째 말날에 장을 담갔다.

이 전통을 살려 음력으로 ‘장의 날’로 기념하고 장 담그는 행사도 하면 좋겠지만 음력이라 매년 바뀌는 단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 담그기의 과학적인 의미를 살려 아무래도 양력으로 ‘장의 날’로 잡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음력으로 해야 좋을 것인지 양력으로 해야 좋을 것인지는 전문가의 논의를 통해 결정돼야 할 것이다. 참고로 정월 대보름 후 말날을 오늘날 양력으로 바꾸면 어림잡아 2월 20일에서 3월 10일 사이에 해당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장이 세계적으로 ‘맛있는 소스’로 자리매김하고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장#담그기#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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