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귀환을 이변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지만 현실 정치에 이변은 없다. 미국 국민이 트럼프를 원했기 때문에 그의 귀환이 가능했을 뿐이다. 트럼프 당선인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이유는 없다. 트럼프가 다시 나타나 큰 문제인 것처럼 바라보는 진보 일색의 미국 언론에 경도되지 말고 통상과 안보 분야, 특히 한미동맹에 관한 트럼프의 정책들을 차분히 지켜보면서 현명하게 대응하면 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보다 강력한 무역 규제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기술 탈취, 마약 유통, 불법 이민 그리고 안보 위협 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징벌적인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필요하면 수출과 수입을 직접 규제한다는 것이다. ‘자유무역을 빙자해 미국의 국익을 손상하는 것을 막고 통상정책을 안보정책과 연계해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각국의 ‘환율 조작’ 여부에 대한 미 재무부의 감시가 강화될 것이며 미국과 경쟁하는 분야인 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반덤핑 관세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한국은 통상 문제와 관련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대미 수출 증가 요인을 잘 분석하고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면 첨단 군사장비, 에너지, 민간 항공기 분야를 중심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에 부응하며 흑자 규모를 축소하려는 노력도 보여줘야 한다.
미국의 대중 무역 규제로 한국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한국이 반사 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단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클 가능성이 있어 예의주시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 한국에 공동 대응을 요구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도 미리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안보와 관련된 공동 대응에는 미국과 같이 갈 수밖에 없겠지만 이웃인 중국과의 소통에도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정책은 간명한 원칙을 토대로 한다. 미국의 자원을 동원해 ‘무료 안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해야 하는데 32개 회원국 중 러시아 주변 12개 국가만 이 의무 비율을 충족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 취임 후 의무 비율에 미달하는 나토 회원국들을 거세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국에는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을 더 늘릴 것을 요구할 것이다. 합리적인 선에서 방위비 분담 규모를 더 늘려 주는 것이 현명한 처신일 수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이미 협상을 끝냈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야 한다. 얻는 것은 없고 미운털만 박힌다. 다른 쪽에는 기회가 있다. 날로 증가하는 중국의 해군력이 태평양 지역의 미국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군함을 대폭 늘려야 하는 미국은 한국의 조선산업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노동력을 수입하며 조선산업 부활을 꾀하고 있는 만큼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소통하려는 시도가 바이든 행정부보다는 적극적이겠지만, 1기 때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 실제 행동보다 수사가 더 풍성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행동에 나서도 트럼프 1기보다 훨씬 더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이고, 북한이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재개할 경우 문재인 정부처럼 가운데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 우리는 당사자에 가깝지, 제3자가 아니다. 미국이 가진 대북 협상 카드에 우리 안보를 침해할 요소가 없는지 우리와 사전 협의를 하도록 미국 측에 요구하고 관철하면 된다.
평택 미군기지는 미국 영토 밖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중국 억제(Contain China)’를 외치면서 중국 수도 베이징에 가장 근접한 최대 규모의 해외 군사기지를 포기하고 철수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된다고 판단하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 대중국, 대러시아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이미 모습을 드러낸 한미일 협력을 소홀히 할 이유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주한미군 철수가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20일(현지 시간)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한미 간의 갈등 요인을 걱정하기보다 공통 이익을 찾아내고 공유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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