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떠나는 주한 美 대사 “계엄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불행”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9일 23시 24분


미국으로 복귀한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한미동맹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던 12·3 비상계엄의 밤 상황을 공개했다. 서울에서 2년 반 재직했던 골드버그 전 대사는 이임을 하루 앞둔 5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계엄 선포와 해제 국면에서 가까스로 통화했던 대통령실 인사에게 “어떻게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느냐”며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함께 상황 설명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실) 통화 상대가 계엄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급박한 계엄 상황에서 자신이 통화한 한국 정부 인사가 2명뿐이었다고 밝혔다. 하나는 계엄 선포 직후 전화를 걸어와 계엄 성명서를 읽어내려간 외교부 당국자였고, 다른 하나는 어렵사리 통화했지만 계엄에 대해 모른다던 대통령실 인사라고 했다. 외교관답게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특전사 정보사 등 핵심 부대가 계엄작전에 투입됐는데도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포함해 누구도 미국에 상황 설명은커녕 사후 정보 공유조차 않았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일시적 동맹 오작동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실 인사에게 고함쳤다는 게 맞느냐”고 질문받은 뒤 10초간 머뭇거리다가 “조금 그랬다”며 인정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윤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주도한 사실에 대해 미국이 느낀 당혹감 내지는 배신감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대사가 이임하며 이렇게까지 불편한 사실을 공개한 전례를 찾기 힘들다. 계엄 직후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이 심각하게 오판했다”고 한 비판도 이래서 나왔을 것이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계엄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불행한 사건”이라고 했지만,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국회 절차에 대해선 “민주주의와 헌법이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미국도 우리 민주주의가 갖는 원상회복의 힘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결국 잠시 흔들렸던 동맹을 반석 위에 다시 세우는 첫걸음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수사와 탄핵심판 국면의 사회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 사회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작동을 멈췄던 위기 시 동맹 간 비상 소통채널을 재점검하는 일도 놓쳐선 안 된다.
#12·3 비상계엄#미국#필립 골드버그#전 주한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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