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조사 과정에서 상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은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조사 보고서 이첩을 보류하라’고 했지만 박 전 단장이 항명했다는 게 주된 혐의다. 법원은 이 전 장관이 보고서 내용을 수정하려고 이첩 중단을 지시한 것은 “의도, 방법 등에 비춰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 전 단장이 ‘수사 축소 의혹’을 제기해 이 전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항명 논란의 뿌리는 ‘VIP 격노 의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3년 7월 31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혐의자에 포함됐다는 보고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 하느냐’며 크게 질책했다는 내용이다. 전날 이첩을 승인했던 이 전 장관이 이날 대통령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뒤 태도를 바꿔 김 전 사령관에게 이첩을 미루라고 지시하면서부터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군인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에 있고, 군은 초동조사 결과를 ‘지체 없이’ 넘기라고 규정돼 있다. 그래서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관이 이첩을 늦추라는 명령을 할 권한 자체가 없다고 봤다. 박 전 단장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규정대로 신속하게 자료를 넘긴 것이다. 그런데도 군은 박 전 단장을 보직 해임하고 형량이 무거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가 무리한 적용이라는 지적이 나온 뒤 항명 혐의로 바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박 전 단장에게 ‘괘씸죄’를 물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전 장관이 지난해 총선 전 호주대사로 임명됐다가 ‘런종섭’ 논란에 휩싸이는 등 후폭풍이 거셌지만, 외압 의혹의 실체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세 차례 발의된 특검법은 모두 윤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뒤 폐기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하고 있지만 진척이 더디다. 누가, 왜 젊은 해병이 안타깝게 희생된 사건의 진상 규명을 방해했는지 명확히 가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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