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정은]대학가 등록금 인상 움직임…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0일 23시 12분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요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건물에 비가 새는 곳은 없을 겁니다. 반면 대학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에요.”(한 지방 사립대 총장)

최근 서강대와 국민대가 2025학년도 등록금을 5%가량 인상키로 한 가운데 올해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거나 추진할 의사를 밝힌 대학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연세대, 경희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도 등록금 인상 대열에 합류할 태세다. 2009년부터 17년째 이어진 정부의 등록금 동결 기조에 반대 의사를 표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각 대학 총장들은 “재정난으로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립대도 등록금 인상을 추진했다. 국립대 총장들 협의체인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가 8일 교육부 오석환 차관과 간담회를 갖고 등록금 인상을 강하게 요청한 것. 결과적으론 등록금 동결을 강조한 교육부의 요구에 맞춰 입장을 선회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강산이 대략 2번 바뀌는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132.8% 인상됐다. 하지만 실질등록금은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학령인구마저 줄어들다 보니 대학들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취재 현장에서 마주한 대학의 현실은 처참했다. 한 지방 사립대 공대 실험실에는 고장 나고 깨진 실험기구가 수두룩했고, 음대 연습실은 방음조차 되지 않았다. 피아노는 낡고 오래돼 조율조차 안 될 정도였다. 학생들은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보다 여건이 열악하다”는 자조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서울의 한 대학은 지난해 장마 때 양동이 40개로 건물 곳곳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내기도 했다.

등록금 동결의 17년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학의 아우성이 일면 이해가 된다. 정부는 가계 부담 등의 이유로 2009년부터 국가장학금Ⅱ 유형 지원 등과 연계해 등록금 동결을 압박했다. 고등교육법에선 등록금 인상률을 직전 3개 연도 평균 물가상승률의 1.5배(올해 5.4%)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림의 떡’ 수준이다. 대학들은 재정 지원 권한을 쥐고 있는 정부의 방침을 대부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7년째 이어진 동결은 결국 재정난 문제를 부채질했고, 대학들은 ‘생존’ 차원에서 등록금 인상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자원은 ‘인재’다. 고급 인력을 키우는 건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몫인데, 이런 부실한 재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정부의 ‘등록금 동결’ 압박 기조는 같았다. 민감한 민생 이슈를 자극해 표심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느린 속도라도 안정적으로 등록금 인상을 허용해 대학의 재정 숨통을 터줬더라면 어땠을까. 제2의 한강(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제2의 허준이(2022년 필즈상 수상) 교수 등을 낳는 토대를 다질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정부는 현실적으로 긴 안목에서 등록금 인상 등에 대한 각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교육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등록금 인상#대학 재정난#정부 정책#소비자물가지수#교육부#교육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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