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유재동]미국 국뽕 티셔츠의 성공이 의미하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0일 23시 15분


유재동 산업1부장
유재동 산업1부장
요즘 미국 소매업체 월마트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티셔츠가 있다. 작년 독립기념일(7월 4일)에 출시된 이 옷은 가슴팍에 ‘AMERICAN MADE’(미국산)라는 글자가 박혀 있고 아랫단엔 작은 성조기 문양이 들어가 있다. 얼핏 보면 애국심에 호소하는 여느 ‘국뽕’ 상품과 다를 게 없는데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우선 가격이 12.98달러(약 1만9000원)로 매우 착하다. 또 방적 염색 봉제 등 모든 생산 과정이 실제 본토에서 이뤄졌다. 면화의 원산지도 물론 미국이다.

자국 공급망 재건으로 제조업 부흥 시도

티셔츠는 ‘아메리칸 자이언트’라는 업체의 제품이다. 베이어드 윈스럽 대표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며 이 회사를 창업(2011년)했다고 한다. 그가 유년기를 보낸 1970년대만 해도 미국의 의류 산업은 제법 경쟁력이 높았고 거리엔 품질 좋은 국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흔했다. 하지만 이후 세계화가 진행되고 인건비가 싼 중국 등 해외로 생산기지가 옮겨가며 순식간에 수입 의류가 미국 시장을 점령했다. 윈스럽은 타임머신을 되돌려 아직도 미국이 질 좋고 저렴한 옷을 생산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고자 했다. 이 회사는 미국 남부 농장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원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조달하고 공장 자동화로 생산 비용도 줄였다. 결정적으로 월마트와 대규모 공급 계약으로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게 13달러 티셔츠가 가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됐다.

물론 이런 제품의 성공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여전히 미국에서 팔리는 옷의 95% 이상은 해외에서 생산된 수입품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메리칸 자이언트의 ‘작은 실험’에 미국은 적지 않게 고무돼 있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자국 내 공급망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고, 그로 인해 산업 기반을 지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표본까지 제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약대로 수입품 관세를 대거 인상할 경우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경쟁력은 더욱 배가될 수 있다. 기업들은 굳이 애국심에 호소하지 않고도 외국산 못지않은 가성비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내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국 내에서 모든 생산 과정을 진행하려는 기업들의 행보는 차기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100% 부합한다. 관세뿐 아니라 앞으로 또 어떤 인센티브가 제2의 아메리칸 자이언트를 탄생시킬지 모를 일이다.

미중發 통상 악재, 한국엔 산업 전체 위기

제조업 부흥에 대한 미국의 기대감은 역으로 한국에는 상당한 도전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드높은 관세 장벽에 더해 이전보다 더 촘촘한 공급망으로 철벽을 치면 우리 기업이 거대한 북미 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은 갈수록 좁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 최대 시장인 중국 수출의 둔화로 고전하고 있지만, 지난해 미국을 상대로는 사상 최대 흑자를 내며 무역 전선에서 선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트럼프는 보호무역과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 정책만으로도 모자라서, 자국 내 생산이 어려운 핵심 산업은 한국 같은 동맹국을 쥐어짜서 미국 땅에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할 태세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요구를 대놓고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그는 취임도 하기 전에 이웃나라에 영토를 내놓으라는 협박마저 불사하는 인물이다.

우리 기업은 이런 미국발 악재에 더해 중국의 저가 상품 밀어내기로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고 있다. 중국산의 쓰나미에 내수 시장이 잠식되고 미국 등 해외 시장의 판로마저 막힌다면 단순한 통상 위기를 넘어 자칫 산업 기반의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 이처럼 대외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 이를 버텨내야 하는 나라 꼴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기업들로서는 그 어느 해보다 불안한 한 해의 시작이다.

#미국 티셔츠#AMERICAN MADE#아메리칸 자이언트#자국 공급망#제조업 부흥#관세 인상#무역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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