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뇌 썩음’, 이겨낼 자신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5일 23시 18분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초고령사회 진입과 동시에 한국사회 퇴행을 경고하는 신호등이 여기저기 켜지고 있다.

지난해 말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미국 생태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54년 ‘월든’에서 처음 쓴 말이라고 한다. ‘영국은 감자 부패(potato rot)는 치료하려 애쓰지만 뇌의 부패를 치료하려는 노력은 없다’며 시민들이 복잡한 사고를 거부하고 정신적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늘날 뇌 썩음은 주로 청소년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을 경고할 때 거론된다. 자극적인 쇼트폼 콘텐츠 과잉 소비로 집중력이 저하되고 문해력이 약화되는 등 지적 퇴화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특히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에 중독성이 있어 청소년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극우 유튜브에 중독된 대통령

비단 청소년뿐이랴. 중노년층도 뇌 썩음에 유의해야 할 세대로 꼽힌다. 가뜩이나 40대부터 뇌 전두엽이 위축되는 게 자연의 섭리인데, 당장 편하다고 유튜브 삼매경에 빠져들면 세상을 객관화할 단서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알고리즘에 끌려다니다 보면 정보의 편식이 일어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 더욱 강화된다.

극우 유튜브에 중독돼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버린 윤석열 대통령의 상태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SNS 중독에 의한 뇌 썩음이 비상계엄에 이르는 오판을 낳고 그것이 온 나라를 흔들어버렸다. 여기에 중노년이 흔히 접하는 알코올과 고혈당, 스트레스는 전두엽을 더욱 위축시켜 감정 조절 장애와 인지 능력 후퇴를 가져온다.

한국인 문해력도 추락하고 있다. 문해력(리터러시)은 글을 읽고 해석하는 힘인데,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상식이 갖춰져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흔히 청년들의 문해력 문제로 ‘사흘’을 4일로 안다거나 ‘시발점’을 욕으로 알더라는 우스개가 떠돌지만, 객관적인 조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 문해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한 81개국 만 15세 학생 대상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조사에서 한국 학생은 읽기 영역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해 조사한 만 16∼65세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성인 문해력은 500점 만점에 249점으로 OECD 평균(260점)보다 11점 낮았다. 10년 전 조사 때보다 20점 이상,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고 연령이 높을수록 하락 폭이 컸다.

지난해 8월 통계로 한국인 1인당 유튜브 시청 시간은 하루 73분꼴로 5년 전보다 2배 늘었고, 세계 유튜브 사용자들의 하루 평균 19분의 4배에 가깝다.

물론 성인 문해력이 빠르게 떨어지는 이유를 유튜브에만 돌리는 건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책이나 신문 같은 활자를 읽는 모습이 급격히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 유튜브 시청하느라 TV도 책도 안 본다는 어르신도 부쩍 늘었다.

뇌 썩음 막으려면 세상의 상식과 소통해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르신들에게 당장 유튜브 시청을 줄이고 책과 신문을 읽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시라고 권하고 싶다.

과거 종이신문 독자들은 이웃들이 가진 일반적인 상식과 교양을 알고 배우기 위해 신문을 구독했다. 아무리 개성과 다양성의 시대라 해도 동 세대의 관심과 생각을 알아볼 필요는 있다. 나아가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내 생각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공간이 생겨날 수 있다.

#뇌 썩음#SNS 중독#극우 유튜브#문해력#정보 편식#인지 능력#초고령사회#고령화
  • 좋아요
    7
  • 슬퍼요
    0
  • 화나요
    2

댓글 12

추천 많은 댓글

  • 2025-01-16 08:09:07

    돈벌이 유튜버들이 결국 나라를 썩게 하고 있다.

  • 2025-01-16 03:44:06

    좋은 기사입니다. 뇌썩음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도 국가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가 봅니다.

  • 2025-01-16 08:07:04

    서영아 씨, 콘텐츠나 플랫폼은 문제가 아닙니다. 성인이 문해력이 낮은 이유는 헷갈리는 단어나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국어사전을 참고하는 습관이 필요하지만 정보가 넘치는데 여유가 없으니까 뉘앙스로 해석하는 습관이 생겨서 그래요.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하는 분위기가 심하니까 그때부터 문제로 자라는 씨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평생교육이라는 말처럼 평생 해야 하는데 학생 때 경쟁(모든 에너지를 쏟는 분위기)을 유도하면 성인으로 자란 후에는 즐기면서 하기 힘들죠. 무론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으니 뒤늦게 깨닫고 즐기면서 하죠.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7
  • 슬퍼요
    0
  • 화나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