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문을 열자마자 고성이 들렸다. 팔순 가까운 어르신 한 분이 막무가내로 밖으로 나가려 하자 두 사람이 극구 말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늘 조용하기만 했던 요양병원에서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자세히 보니 막아서는 사람은 김 선생님이었다. 김 선생님은 요양병원의 주말 근무자로, 안내나 주차 확인 같은 자잘한 업무를 처리하시는 분이다. 마침 선생님에게 여쭐 것이 있었는데 당장은 어려워 보였다. 할 수 없이 로비 한쪽에 앉아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 언뜻 들리는 내막은 이러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어르신은 요양병원 환자셨다. 최근 아내분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게 돼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았다. 그날은 원래 아드님이 와서 어머니 근황을 전해주기로 했었는데 갑작스레 못 오게 되는 바람에 실망이 크신 듯했다. 답답한 심정에 직접 댁으로 가려 했으나 이를 병원 직원들이 막아선 것이다. 차가운 날씨에 외투도 안 걸친 차림새에서 어르신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어르신은 화가 나셨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오죽했으면 저러시겠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려던 찰나. 어르신의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어 십수 년 전 정년퇴직하셨다는 공공기관의 명칭을 들먹이셨다.
옆에서 듣기에도 거북했다. 하물며 당사자인 김 선생님은 어떨까 싶어 쳐다보니 선생님은 되레 평온했다. 오히려 어르신을 치켜세우는 모습이었다. 어르신이 젊은 시절 애써주신 덕분에 자녀 세대가 편안하게 잘 살고 있다며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서서히 평온을 찾으신 어르신은 결국 선생님의 권유대로 병실로 올라가셨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한바탕 소동은 끝났지만 김 선생님은 그때부터 바빠졌다. 어르신과 씨름하는 사이 선생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여럿 생겼기 때문이다. 차례로 방문객의 용무를 확인한 김 선생님은 재빨리 밀린 업무를 해 나갔다. 지칠 법도 한데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재촉하는 이들의 원성까지 받아 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분은 대체 어떤 분일까.
얼마 후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김 선생님은 모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재직하다 몇 년 전 회사를 떠난 퇴직자였다. 올해 60대 초반으로 요양병원에서 근무한 지는 2년이 됐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평판이 좋았다. 묵묵히 맡은 일을 척척 잘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특히 컴플레인 해결만큼은 병원 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 대단한 점은 선생님에 대한 병원 측의 절대적 신뢰였다. 한번은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퇴사하려 했는데 병원 쪽에서 붙잡았다고 했다. 계약 조건을 바꾸면서까지 선생님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후문이었다. 심지어는 원무과 직원들도 선생님에게 각종 조언을 구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얘기도 돌았다. 일개 데스크 사원으로 입사해 병원의 중차대한 일에 관여하게 된 선생님의 입지가 놀라웠다.
돌아보니 나의 퇴직 후 시간은 무너진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한 분투의 여정이었다. 속히 격에 맞는 높은 직위에서 사람들의 인정과 칭송을 받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내게 허락된 일자리는 죄다 시급 1만 원짜리 단순 계약직이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로 여겨져 집중하기가 싫었다. 그래서인지 매번 결과가 좋지 않았다. 혹여나 나를 드러내려 예전의 성공을 들추기라도 할라치면 주변과 골만 깊어졌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은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큰일은 오죽하랴.
결국, 퇴직자가 존재감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과거의 영광이나 높은 자리를 붙잡는 태도가 아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자세와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김 선생님이 딱 그와 같았다. 선생님은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는 화려했던 이력에 기대지 않았다. 요양병원에서 주어진 소소한 일들을 성실히 감당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나갔다. 이것이 선생님 존재감의 비결이었다.
김 선생님의 삶은 퇴직 후 새로운 길이 어떻게 열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조금 어렵더라도 지금 내 모습을 직시하고 낯선 환경부터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내가 누군데 이런 일이나 해야 해’라고 생각하면 애당초 나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하찮은 임무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행동으로 완성되고 하나둘씩 쌓여 갈 때 존재감을 넘어 인생의 의미도 깊어질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퇴직 후 삶은 언젠가 다가올 현실이다. 그 시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시 시작된 새해에는 김 선생님처럼 나만의 존재감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퇴직 후 존재감은 떠나온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에머슨은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인간은 두 종류로 나눈다. 선을 행하는 사람과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 퇴직과 동시에 수입의 목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자유로울 수 있다. 선을 행하며 살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는 순간, 삶에는 나를 만족하게 하는 '보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좋은 기사입니다.
에머슨은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인간은 두 종류로 나눈다. 선을 행하는 사람과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 퇴직과 동시에 수입의 목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자유로울 수 있다. 선을 행하며 살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는 순간, 삶에는 나를 만족하게 하는 '보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좋은 기사입니다.
2025-01-29 11:19:21
동아! 기사 좀 읽기쉽게 글자를 키워서 기사 올리세요. 다른 매체들은 안그런데 유독 동아일보만 깨알보다 적은 글자체로 올리니 일기가 힘드네요
2025-01-28 11:40:17
소설은 서점으로 보내라
2025-01-28 10:05:49
정경아 씨, '노익장 어떤 사람인가?'라고 자문자답하세요. 무론 입법부와 사법부가 사회 문제 근원을 해결찮으면 국가 불문법과 성문법 영향을 받는 시민들은 현명한 답변을 하기 힘들죠.
댓글 7
추천 많은 댓글
2025-01-27 07:59:32
행복에 대한 귀한 통찰이네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2025-01-29 16:36:18
에머슨은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인간은 두 종류로 나눈다. 선을 행하는 사람과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 퇴직과 동시에 수입의 목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자유로울 수 있다. 선을 행하며 살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는 순간, 삶에는 나를 만족하게 하는 '보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좋은 기사입니다.
2025-01-27 17:00:59
참 공감되는 글이네요.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