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부정선거 음모론이라는 역병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30일 23시 12분


조직적인 개표 부정 확인된 적 없는데도
대통령은 증거 없이 주장-유튜버는 확산
사회적 신뢰 위협하는 음모론 타협 안 돼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부정선거 음모론이라는 역병이 결국 내 주변까지 왔다. 알고 지내던 변호사님 한 분이 부정선거론에 빠져들었다. 충격이었다.

나는 ‘선관위 직원 중에 중국 간첩이 99명 있다’, ‘노벨상 수상감인 형상기억종이로 가짜 투표지를 만들었다’ 같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 그뿐이랴. 이런 저급한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리라고도 믿지 않았다. 내 안의 엘리트주의까지 솔직히 고백해 말하자면, 대통령이 주장한 여러 계엄 선포 사유 중 다른 것은 몰라도 부정선거 음모론만은, 그 자신도 믿지는 않는 말로 우매한 군중을 자극하려는 얄팍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법조인들은 기본적으로 법과 질서를 신뢰하고, 보수적인 성향이고, 증거주의에 입각한 사고를 장기간 훈련, 반복한다.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증거 없는 음모론에 심취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당선자가 아닌가. 선거의 당선자가 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은 동기론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지나치게 비합리적이었다.

그러나 멀쩡해 보이던 지인이 갑자기 중국인 간첩과 선관위 서버 해킹을 주장하자, 나는 아득해졌다. 설마 우리나라 현직 대통령, 변호사인 그의 대리인단, 일부 여당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도 지지율을 위한 선동이 아니라 진심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것일까?

동아일보를 비롯한 레거시 언론이 수차례 지적했듯,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선거에서 조직적인 개표 부정이 확인된 적은 없다. 우리나라 선거는 실물투표다. 유권자가 직접 종이에 도장을 찍어 기표하고, 그 투표지를 투표참관인들이 보는 앞에서 투표함에 넣는다. 투표함은 각 정당과 후보자별 투표참관인과 호송 경찰이 개표소로 가져가고, 손으로 일일이 확인하는 수개표로 한 표 한 표가 확인된다. 대통령을 비롯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량 인쇄로 위조한 가짜 투표지 수천 장이 투표함에 섞여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지금의 기표-개표 시스템하에서 가짜 투표지 수천 장이 투표지 안에 들어가려면, 선거 준비부터 개표까지 전 과정에 거대한 선거 조작 세력, 국가공권력보다 훨씬 강대하고 철저하고 비밀스러운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이 서로 공모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세력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 정도의 자본과 권력을 가진 조직이 실존한다면 애써 부정선거를 하는 것보다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그들 입장에서 훨씬 효율적이리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서 중국인 간첩설이 나온다. 선관위 등에 비밀스럽게 투입된 중국 간첩이 부정선거에 필요한 이 모든 일을 했다는 것이다. 이 가짜뉴스가 외국인 혐오, 중국 혐오임은 명백하다. 근거도 없다. 가짜뉴스에 사용된 사진은 10여 년 전 불법조업 중 체포된 중국 선원들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중국이 부정선거로 한국 정치에 개입을 시도하리라는 발상은 너무나 민주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 다소 우스꽝스럽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 우리 국익을 침해하는 중국 간첩이 있더라도 99명이 선거연수원에 모여 부정선거를 획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비효율적인 첩보 활동이 말이 되느냔 말이다.

이 부정선거 음모론은 스케일도 굉장히 크다. 중국 간첩단의 부정선거 획책에 동원됐다는 한국 선관위는 세계 곳곳의 부정선거를 야기했다고 한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낙선한 것도 더불어민주당과 한국 선관위의 부정선거 조작 때문이란다. 우리 선관위, 중국 간첩, 야당은 계엄령이 선포된 작년 12월 3일에도 콩고 대선 투표를 부정선거로 조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전 세계에 혼란을 야기하고 민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선관위가 마치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 같은 역할이라는 것이다.

신문을 탐독하는 독자들은 이 정도로 황당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음모론을 믿지 않을 정도의 판단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와 같은 대안적 매체를 통해 이 음모론은 자꾸만 퍼지고 있다. 한 나라의 수장이었던 자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증거도, 논리도, 합리성도 없는 전 세계 부정선거론이나 중국 간첩론을 주장한다. 당장의 방송 수익, 지지율, 헌금 따위를 위해 기꺼이 이 주장의 확성기가 되는 이들이 존재한다. 자꾸 듣다 보니 이 밑도 끝도 없는 음모론을 믿어 버리는 사람까지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신뢰를 좀먹고 합리적 사고를 무너뜨리는 이 음모론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상식과 질서를 믿어야 한다. 터무니없는 주장은 무시해야 한다. 음모론이라는 역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부정선거#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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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8

추천 많은 댓글

  • 2025-01-31 04:09:59

    헷소리 그만 하고, 부정선거 수사 특검 조속히 실시하고, 합당한 근거와 증거는 법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어떻게 서로 다른 사람이 투표한 투표지들이 약국 조제약 봉투들이 서로 붙어있듯 서로 달라붙어있어 손으로 찢어 분리시켜 캐표해야 하냐? 그게 외부에서 대량으로 조작된 투표용지시고, 다급해 미처 분리 옷시킨 불법 투표용지의 증거가 아니냐?

  • 2025-01-31 04:12:43

    뻔한 증거를 묵살하는 법원이 문제 아닌가?

  • 2025-01-31 06:50:07

    이 기사 부정선거 주제니 우회접속한 대남공작원 새끼덜 졸라 반대 눌러 댈꺼다 ... 해외 공작원 특성상 글은 못쓰고 반대 단추만 졸라 눌러 대겠지 ㅋㅋㅋ ****도 얼굴에 '나 페미Nyon'이라고 써있구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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