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직무에 충실한 선한 공직자를 바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31일 23시 15분


대통령의 오판으로 생긴 혼란 수습하려면
정치권 눈치 보거나 다른 기회 노리지 말고
해야 할 일은 맡고 있는 그 일뿐이란 충직과
내가 믿는 정의가 폭력 될 수 있단 성찰 필요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살다 보면 내게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잊고 살다가도 어느 순간 그때 들은 말, 그때 받은 감동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1980년대 인기가 많던 스포츠 신문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한 명은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그의 회고록이 연재된 적이 있는데, 병역 문제로 고생하던 선수 시절 일화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1976년, 그는 복무 기간을 줄여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공군에 입대한다. 1978년, 약속대로 복무 기간이 끝났다는 생각으로 독일의 한 프로 축구팀과 계약을 맺고 분데스리가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에게 특혜를 준 것이 뒤늦게 문제가 되어 재입대를 명령받는다. 독일 축구팀과의 계약은 파기됐고 국내 경기에도 출전할 수 없었다.

약속을 저버린 이들에 대한 분노, 분데스리가를 놓친 아쉬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나 같으면 어땠을지, 그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는 그때 그 힘든 상황에서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축구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개인 훈련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런 성실함 덕분에 다시 분데스리가에 입성했고, 한국 축구의 전설로 남았다.

그의 일화가 문득 다시 떠오른 건 요즘 한국 상황 때문인 것 같다. 대통령의 오판으로 한국이 혼란에 빠졌다. 혼란을 수습할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이제는 사방팔방이 엉망진창이다. 정치권 눈치나 보고 있지는 않은지, 이 기회에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하지는 않는지, 이미 줄을 댄 사람은 자기 진영의 이익을 위해 공익을 내팽개치는 건 아닌지.

지금 한국의 고위 공직자라면 대법원이든, 헌법재판소든, 정부 부처든, 선거관리위원회든, 그 어디에 있더라도 자격이 있으니 그 자리까지 올라왔을 것이다. 엉망이 된 현실에서 차범근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축구밖에 없었듯 그래서 그가 축구에 전념했듯이, 엉망진창이 된 지금 한국에서 장관이, 대법관이, 헌법재판관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지금 그가 맡고 있는 바로 그 일이다.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은 이미 얼마나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성취인가? 설사 여기서 경력이 멈춘다고 해도 성공한 인생이다. 그러니 좌우로 눈을 돌리지 말고 오직 직무에 충성함으로써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면 고맙겠다.

스포츠 신문에서 만난 다른 한 명은 김남조 시인이다. 어느 기자가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한국 사회의 이런저런 얘기를 푸는 연재였던 것 같은데, 하루는 영화배우 김지미와 최무룡의 간통 사건이 주제였다. 사건의 전말은 잊었지만 사건의 사회적 파장에 대한 소회를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많은 저명 인사가 그들의 불륜을 질타하는 와중에, 그 사건을 안타깝게 보며 그 사랑을 잘 지키길 바란다는 이가 있었다. 김남조 시인이었다.

회고록 저자가 당시로서는 통념에 반하는 이례적인 말을 해서 인상에 남았다 했는데, 나도 그랬다. 정확하지 않은 내 기억을 토대로 대강 시인의 말을 다시 구성해 보면, 간통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 세간의 비난을 받고 나락에 떨어졌으니 정말 사랑해서 한 일이라면 그 사랑을 잘 지키길 바란다는 당부였던 것 같다. 간통은 당연히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부끄럽고 추잡한 일이라는 게 당시의 통념이었는데, 그 사랑을 지키길 바란다는 말이 놀라웠다.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병풍처럼 에워싸는 죽음들’이라는 말로 그의 성장기를 묘사한 적이 있다. 그 고통의 경험 때문인지 그의 시에서는 모성의 연민이 느껴진다. 간통으로 유치장에 갇힌 배우를 향한 따뜻한 당부도 사람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점점 잔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시인이 품었던 모성의 연민이 그립다. 내가 믿는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아닐지, 모성의 연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고민하고 성찰할 일이다.

그런 선한 연민이 공직자에게 특히 더 필요한 때다. 퍼렇게 날이 선 사회를 부드럽게 감싸야 하기 때문이다. 차범근처럼 충직하고 성실하면서 김남조처럼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공직자라면, 그의 결정이 나와 다르더라도 존중하고 따르고 싶다. 정치에 눈을 돌리지 말고 오직 직무에 충실하면서 모성의 연민으로 고민하고 조심하는 그런 공직자를 바란다.

#차범근#김남조#공직자#연민#선함#정치#정의#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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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25-02-01 01:03:21

    이 양반은 일본 경제 전문가인데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지? 지금 공직자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만 하면 탄핵을 해대는데 어찌 자기업무를 수행할 수 있나? 대통령이 대통령일을 하면 탄핵, 국무총리가 총리 일을 하면 탄핵, 방심위원자이 자기 직무 하면 탄핵 그리고 검사가 검사일을 하면 탄핵... 오직 이죄명의 죄를 가리고자 하는데.. 그래서 대통령에게 중ㅓ진 권한 내에서 계엄을 했건만... 만약 대통령의 법의 위반이 있으면 재판을 통해 결정 지으면 될 것을...

  • 2025-02-01 01:48:17

    아무리 신문에 글을 싣고 싶어도, 교수들이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닌 얘기를 하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한다. 빈깡통 같은 글이 될 수 밖에 없다. 명색이 학자로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 아닌가?

  • 2025-02-01 07:17:58

    이분은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그.이유를 잘 아시지도 못하면서, 대통령의 오판으로 한국이 혼란에 빠졌다고 단정하는 대단히 위험스러운 발언을 내 뱉고 있는것 같다. 왜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는짖를 설명하는 대통령 담화문이나 대통령의 발언이나 주장을 일본에 있으면서 정확하게 잘 모르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평가나 판댠을 하지 말아야지 왜 주제넘게 대통령의 오판으로 한국이 혼란에 빠졌다고 단언하고 있는가? 헌법에 있는 대통령 비상대권을 사용한것을 야당인 민주당이 192석을 빌미로 국힘당 배신자 일부 동조를 받아 탄핵가결한것 모르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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