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세계는 통제 불능… 통제할 수 있는 내면에 신경쓰라[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2일 23시 00분


〈96〉 구멍이 아닌 도넛을 보라
‘컬트 거장’ 데이비드 린치 화두… 불안-공포에 지배되는 인간들
통제 밖 외부 집착해선 못 벗어나… ‘도넛’은 통제 가능한 내면 상징
중요한 것 집중하는 삶 살고 있나

왼쪽 사진부터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초기작 ‘이레이저 헤드’(1977년) 포스터와 ‘멀홀랜드 드라이브’(1999년) 포스터. 사진 출처 데이비드 린치 X
《기괴하고 매혹적인 영화들을 만들어 온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이레이저 헤드’ ‘블루벨벳’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 괴작으로 관객들을 당황시켰던 데이비드 린치, 썩어가는 동물 사체 바라보는 일을 즐겼던 변태적인(?) 예술가 데이비드 린치, 그가 얼마 전 타계했다.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유족은 “세상에 큰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그가 말했듯이 구멍이 아니라 도넛을 보라”고 말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구멍이 아니라 도넛을 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라는 고승의 말처럼, 보는 일에 대한 엄청난 통찰을 주는 멋진 말처럼 들린다.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라는 뜻일까, 빈 곳이 아니라 꽉 찬 곳을 보라는 뜻일까, 허상이 아니라 진실에 주목하란 뜻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인 도넛에 집중하란 뜻일까.

린치가 2006년에 펴낸 ‘큰 물고기 잡기(Catching the big fish)’란 책에 해당 문장이 나온다. “구멍이 아니라 도넛에 신경 쓰라는 표현이 있다. 당신이 도넛에 신경 쓰며 일을 한다면 그것이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당신은 당신 외부에 있는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은 내면으로 들어가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 이어서 린치는 명상을 통해 세상의 사건들을 겪는 방식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원전을 찾아보면 “구멍이 아닌 도넛을 보라”는 말의 뜻을 좀 더 다채롭게 음미할 수 있다. 먼저 “…라는 표현이 있다(There’s an expression)”는 부분을 통해서, 이 문장은 린치가 만든 말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말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사한 표현을 20세기 초반의 여러 매체에서 찾을 수 있고, 캐나다의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도 비슷한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말들 중 상당수가 공자의 말이 아니라 공자가 인용한 말인 것처럼, 이 말도 린치의 말이 아니라 린치가 인용한 말인 것이다.

“도넛을 보라”고 보도되었던 부분은 단순한 동사 ‘보다’가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다’ 혹은 ‘신경을 쓰다’와 같은 뜻을 가진 ‘Keep one’s eye on (the doughnut)’이라는 표현이었다. 즉, “구멍이 아닌 도넛을 보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무엇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인 셈이다.

사후에 맞은 79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1월 19일 린치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기리며 올린 그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데이비드 린치 X
도넛이란 무엇인가? 한국어 번역본은 “If you keep your eye on the doughnut and do your work, that‘s all you can control”이란 문장을 “도넛에, 즉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는 일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다”라고 번역했다. 이에 따르면 도넛은 자신이 하려는 일을 뜻하는 셈이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도넛은 자신이 하려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전후 과정에서 주의를 집중해야 할 그 어떤 것이다. 뒤이어 나오는 문장에서 분명해지듯, 도넛은 자신의 내면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구멍이 아닌 도넛을 보라”를 말을 통해 린치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세계는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내면에 신경 쓰라는 것이었다. 내면에 대한 관심에 걸맞게 린치는 명상을 꾸준히 실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것이 곧 세계를 무시하고 저버리라는 취지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되어, 결국 세상의 사건들을 겪는 방식이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린치는 믿었다.

실로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세상을 좀 잘 겪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세상에는 어두움이 많아서 인간은 자칫 공포에 잠식될 수 있다. 그 공포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분노를 낳게 마련이라고 린치는 믿었다. 어떤 공포가 가장 무시무시한가? 미국 작가 데이비드 브레스킨과의 인터뷰에서 린치는 “최악의 공포는 우리 모두가 너무도 통제 불능이라는 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에 집착하지 말고 통제 가능한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인간은 공포로부터 상당히 벗어날 수 있다.

자, 공포로부터 벗어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하긴. 재밌는 일을 하다 죽어야지. 린치는 예술에 재미를 느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아이디어와 사랑에 빠지고 표현해 내는 자유로운 삶이 바로 린치가 원한 삶이었다. 그 삶이 쉬웠겠는가? 어느 날 가족들은 젊은 린치를 어두운 거실에 불러 놓고 말했다. 어린 딸을 키워야 하니 영화는 그만 접고 일자리를 구하라고. 그 말을 들은 린치는 신문 배달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현관문 한편에 서 있는 장면을 찍은 뒤, 1년 반 동안 돈을 벌어서야 간신히 그다음 장면, 즉 주인공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린치는 결국 성공했지만,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하는 실패는 감수할 수 있으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다가 하는 실패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한 뒤,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데이비드 린치. 그는 기괴한 변태보다는 헛된 일에 관심을 끊고 자기 인생을 잘 돌보고자 했던 로마 시대 스토아 철학자들을 닮았다.
#컬트 거장#데이비드 린치#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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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25-02-03 10:48:30

    우린 부정선거로 인해 잘못된 자들의 장기집권과 그걸 실현한 중국에 나라가 넘어갈 까봐 공포에 시달리는데 참 한가해서 좋겟다. 이 석은 사회에서 그래도 달달한 과실을 삼킬 수 있어서 너무 좋은겨? 우린 뭉크의 절규을 부정선거를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보는데 북조선의 절규 나만 아니면 되는겨?

  • 2025-02-28 04:28:55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삶은 볼수록 축복받은 삶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네요.. 그 용기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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