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에서 일하다 몇 년 전 퇴직한 한 인사가 얼마 전 기자와 대화하다 TV에서 폭스뉴스를 보더니 불쑥 던진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백악관에 입성한 뒤 폭스뉴스는 연일 ‘트럼프 찬가’로 황금시간대를 도배하고 있다. 간판 앵커들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트럼프가 이 나라를 구하고 있다”는 취지의 멘트를 쏟아낸다.
트럼프 2기 핵심 정책들을 ‘홍보’하는 역할도 당연히 폭스뉴스 몫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마디를 던지면 뉴스 헤드라인으로 뽑는 것도 모자라 각종 토크쇼와 논평 등에서 “정말 좋은 정책”이라며 양념까지 듬뿍 친다. 트럼프 2기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불법 이민자들과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국경 차르’로 발탁된 톰 호먼은 하루가 멀다 하고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민 단속 현황을 중계 방송하듯 알린다.
‘폭스 내각’ 꾸린 트럼프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도 폭스뉴스에 긍정적이다. 그는 이미 백악관과 내각 핵심 보직에 폭스뉴스 출신들을 대거 기용했다. 폭스뉴스에서 주말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피트 헤그세스는 국방부 수장이 됐고, 역시 폭스뉴스의 패널로 오랜 기간 활동했던 태미 브루스는 국무부 신임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연스럽게 ‘폭스 내각’이란 조어도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도 당연히 폭스뉴스 몫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간판 앵커 숀 해니티에게 마음에 담은 말을 실컷 쏟아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였지만 날카로운 질문이 없어 “트럼프 홍보 영상”이란 지적도 나왔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2기 핵심 당국자들을 이웃사촌 부르듯 손쉽게 연결해 독점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폭스뉴스 간 밀월 관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거의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기간 폭스뉴스에 자주 출연해 메시지를 전달했고, 폭스뉴스는 그를 보수 대표 주자로 밀어줬다. 처음 대통령 당선 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자극적인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폭스뉴스를 활용했다. 또 폭스뉴스는 충성도 높은 트럼프 지지층을 틀어잡아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동거, 쭉 갈진 지켜봐야
1996년 처음 방송된 폭스뉴스는 진보 성향인 주류 언론들 틈에서 강성 보수라는 확실한 색깔을 내세웠다. 보수 성향과 화제몰이 중심 전략을 앞세워 보도 채널 중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폭스뉴스의 거침 없는 보도 방식을 빗대어 ‘폭스화(foxification·분명한 의견 제시)’란 말도 등장했다.
이런 폭스뉴스에 ‘권력의 정점’까지 맛보게 해준 게 트럼프 대통령이다. ‘공화당식 세상보기’를 앞세워 무시 못 할 미디어 권력이 된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뒤 뉴스 전달자가 아닌 권력의 동반자이자 참여자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폭스뉴스의 특별한 관계가 쭉 이어질진 두고 봐야 한다. 당장 내년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서로 필요가 적어지고 섭섭함이 쌓이면 틈이 생길 거란 관측도 있다.
그럴 경우 트럼트 대통령은 폭스뉴스보다 더 화끈하게 그를 지지하는 극우 인플루언서나 온라인 대안 매체 등으로 시선을 돌릴지 모른다. 폭스뉴스는 ‘변심’한 전력도 있다. 트럼프 1기가 후반부로 접어든 2019년 민주당 대선 주자 타운홀 미팅을 진행해 트럼프 대통령의 노여움을 샀다. 그 이듬해에는 백악관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불법 투표 결과를 환영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자 생중계를 끊었다. 그럴 때마다 “트럼프의 힘이 좀 떨어지니 폭스가 노선 변경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당장 이런 말이 내년에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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