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복(福) 지지리도 없는 우리 국민이다. 지난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South Korea’s possible next leader)로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을 꼽았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이재명은 역대급 비호감 경쟁자였다. 3년도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정치적 자살을 했으면, 이재명은 당장이라도 대통령을 맡을 수 있을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했다.
차기 대선주자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조명한 이코노미스트 기사. 화면 캡처
‘이재명의 민주당’이 우클릭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이재명 자신의 ‘사법 리스크’ 해소가 더 시급하다. 주렁주렁 걸려있는 재판에서 무죄를 확신한다면, 조속한 판결을 요청해 유권자들의 꺼림칙함을 풀어주길 바랐다.
● 2심 재판 늦추려 지연 꼼수까지
헛된 기대였다. 이재명은 윤석열 못지않은 수준임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윤석열은 4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며 12·3 비상계엄을 없었던 일로 돌리려 들었다. ‘계엄 실패’가 범죄가 아니라면, 살인 미수 역시 범죄가 아니던가?
헌법재판소 5차 변론기일이 열린 이달 4일 윤석열 대통령과 증인들의 발언을 요약한 영상. 윤 대통령은 이날 발언 기회를 얻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영상 8분부터 해당 발언을 들을 수 있다.
이재명도 같은 날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2심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미 헌재가 4년 전 합헌 결정을 내린 허위사실 공표죄 처벌 규정에 대해서다. 막강 대선주자가 위헌 신청하면, 허위 사실 공표 역시 범죄가 아니라던가?
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헌재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2심 재판은 중단된다.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데까지 재판을 늦춰서는, 2심 판결 나오기 전에 대선을 치러 대통령이 되고야 말겠다는 구차한 꼼수가 너무나 노골적이다. 어째 우리나라에선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도 이토록 좀스럽고 치사한가.
2015년 1월 당시 성남시장이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가 뉴질랜드에서 찍은 사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이 후보 왼쪽),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왼쪽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동아일보DB문제의 사건은 이재명이 작년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내용도 추하고 비극적이다. 이재명은 지난 대선 때 대장동 사업 실무를 맡은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에 대해 “하위 직원이라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 백현동 부지 개발과 관련해선 “국토교통부 협박 때문에 용도를 상향 조정했다”라는 둥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한성진 부장판사(53·사법연수원 30기)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그럼에도 유죄가 나오자 민주당에선 “사법살인”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 심지어 “서울법대 나온 판사 맞느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재명은 1심 판결 뒤 소송 통지서를 안 받으려 요리조리 피하고, 변호인 선임도 늦추고, 추가 증인까지 신청하면서 재판을 두 달 가까이 끌었다. 그러더니 심지어 합헌 결정이 난 조항을 또 위헌 신청한 거다.
이재명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하는 공직선거법 250조 1항은 당선을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 등 방법으로 출생지·가족관계·신분·행위 등에 대한 허위 사실을 공표하면 처벌한다고 돼 있다. 그는 5일 재판에서 “‘행위’ 부분은 (범위가) 지나치게 불명확하고 포괄적”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2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한편 이 대표 측은 지난 4일 선거법 위반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형사6-2부(최은정 이예슬 정재오 부장판사)에 당선 목적의 허위사실 공표죄 처벌을 규정한 공직선거법 250조 1항과 관련해 위헌을 주장하며 위헌심판 제청 신청서를 냈다. 뉴스1그렇지 않다. 2021년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 합헌으로 판단한 대목은 기록해 둘만 하다. “법 조항의 ‘행위’는 후보자의 자질·성품·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는 적다.”
● 다수 국민은 이재명의 자질과 성품 걱정
다수 국민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재명의 자질과 성품이다. ‘한국의 트럼프’를 자부하는 이재명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처럼 허위 사실 발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재명의 성품과 관련된 행위로 인해 귀한 목숨을 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님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이재명을 소개한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물론 한미일 3국 협력 지속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밝히는 등 외교적 급변침을 주로 다뤘지만(2022년 10월 한미일 동해 합동 훈련을 ‘극단적 친일 행위’라고 한 것을 뒤집는 태도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디킨스 소설에 등장하는 꿈의 소재”라고 적은 것이다.
가난한 소년공에서 어렵게 공부해 인권변호사이자 노동운동가가 되고 정계에 진출해서 뻔뻔스럽지만 일은 효과적으로 해내는 경영자(an effective, if slippery, operator)라는 평판을 얻었다고 잡지는 전했다. 여기서 ‘slippery’를 어떻게 번역할지 좀 고민했다. ‘효율적이지만 계산적인 정치인’이라고 번역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디킨스까지 인용됐으면 인간의 어둡고 내밀한 본성이 표현돼야 한다고 봐서 ‘뻔뻔’이라고 했다(아니면 교활?).
2022년 6월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시 인천 계양을 후보로 출마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역구 유세 활동 도중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과 함께 “끽”이라고 하고 있다. 이 같은 행동은 “이번에 지면 이재명 정치생명 끝장난다”며 지지를 호소하던 중 나왔고, 당시 국민의힘 대표이던 이준석 현 개혁신당 국회의원은 “제정신이 아닌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동아일보DB ● 어렵게 살아온 서사가 이재명 뿐인가
이재명의 성공담이 디킨스 소설처럼 사람을 끄는 건 사실이다. 소년공 출신의 고난 극복 스토리야 왜 없겠나. 하지만 그걸 10년이나 일기로 쓰고 출판까지 해서 알리는 건 흔치 않다. 1960년대 눈물 나는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후 처음 아닌가 싶다. 이재명은 김혜경씨에게 청혼할 때도 그 일기장들을 몽땅 주면서 “읽어보고 같이 살아줄만 하면 결혼해 달라”고 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고아소년 올리버는 불우한 아이들을 범죄에 이용하는 잔혹한 환경에서도 착하고 굳세게 역경을 극복하고 해피 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어릴 적 겪은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 뒤틀린 흉터로 남아 개인과 사회,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점에서 단순한 권선징악 동화랄 수 없다.
찰스 디킨스의 원작 ‘위대한 유산’을 BBC에서 드라마로 제작하면서 공개한 포스터.‘위대한 유산’에서 디킨스는 아무리 돈과 지위로 신분상승을 한대도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면 결코 ‘신사’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고아소년 핍의 성장 스토리를 통해 드러냈다. 부조리한 사회, 배금주의와 양극화 문제는 소설의 배경인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포함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적지 않다. 사회개혁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도덕적 가치를 우습게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들 ‘윤석열 사태’ 비슷한 꼴이 또 나지 않으란 법이 없다.
● 도덕성이 대통령 기준은 아니라 해도
이재명은 “어릴 때 시장에서 주워 온 과일을 먹었던 그 아픈 기억 때문에 어린이집 과일공급 사업 시작했다”고 했다. 2022년 대선 토론에서 그런 말까지 한 사람이 경지지사 시절 법카(법인카드) 등 경기도 예산으로 과일을 2800만원 어치나 사다먹은 건 도덕성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심지어 공무원을 공노비처럼 부리며 배달심부름까지 시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지난해 11월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위반 혐의’ 1심 선거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 씨는 이 대표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국회의원 배우자에 식사를 제공하고 이를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한 의혹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150만 원 형을 선고받았다. 뉴시스60여년 전 어렵게 자란 사람이 어디 이재명 뿐이랴. 그럼에도 그는 어릴 적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겪었다는 이유로 뒤틀린 흉터를 어쩌지 못하고 잔인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형국이다(과거 이재명은 “권력행사는 잔인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을 동원해 자신이 연루된 불법 대북 송금 수사, 대장동 수사 검사 등을 무더기 탄핵했고, 민주당은 이재명의 선거법 1심 유죄 선고를 내린 판사까지 탄핵하겠다고 겁박했다(그렇다고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용납될 수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야당 대표인데도 이럴진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더 국가를 사유화할지, 나는 무섭다.
안다. 도덕성만이 정치인의 기준일 순 없다는 것을. 하지만 자질과 성품을 무시하고 대통령 잘못 뽑은 댓가를 우리는 지금 톡톡히 겪고 있다. 이재명의 능력이 과연 검증됐는지도 의문이다. 정권 교체에 급급해 같은 잘못을 또 저질러선 안 된다는 소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선 자금 불법 수수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가운데)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보석 상태로 선고공판에 출석한 김 전 부원장은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다시 법정구속됐다. 뉴스1마침 대장동 개발업자들에게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았다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6일 2심에서도 징역 5년의 실형 선고를 받았다. 정치자금이 오간 때는 이재명의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출마 선언 직전이었고, 김용은 이재명 캠프의 총괄부본부장이었다. 6억원의 정치자금을 과연 ‘이재명의 분신’ 김용이 혼자 꿀꺽 했을까. 그런데도 대장동 관련 이재명 1심 재판은 세월아, 네월아 진행 중이다.
‘제왕적 야당 총재’ 이재명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다. 그의 도덕성과 범죄성을 포함해 대선 출마자격을 가려줄 데는 지금으로선 사법부뿐이다. 5일 선거법 관련 2심 재판부는 26일 변론 종결 방침을 재확인하긴 했다. 그래도 불안하다.
이제라도 이재명이 개심해 도덕적 가치를 찾았으면 좋겠지만, 재판부에 기대는 게 빠를 듯하다. 2심 법원은 이재명의 위헌심판 신청을 기각해 재판 지연 꼼수를 막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헌법과 양심에 따라 조속히 판결을 내리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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