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건강한 노년 해법, 예방접종에서 찾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6일 23시 09분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한국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으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건강한 노후를 위해 국가필수예방접종(NIP)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예방접종은 가장 비용 효과적이며 중요한 감염병 예방 수단이다. 예방접종을 통해 수많은 질병에 대처할 수 있고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물론 치료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까지 낮출 수 있다. 또 불필요한 고통을 막아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현재 NIP 사업 대부분은 영유아와 어린이에게 집중돼 있다. 19종의 국가필수예방접종 백신 중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접종은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 등 단 2종뿐이다. 현재 임시 국가접종으로 지원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까지 포함해도 3종에 그친다. 국가에서 고령자에게 권장하는 백신인 대상포진,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B형간염 등은 개인이 알아서 접종해야 한다. 고령자에 대한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상포진 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최근 고령자에게 필요한 예방접종 중 대상포진 백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해 11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상포진 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도 정부와 학계,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고령층에서의 대상포진 위험성을 지적하며 국가필수예방접종 도입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상포진은 50세 이상을 중심으로 매년 70만 명 이상이 걸리며 치료한 뒤에도 대상포진 후 신경통 등 삶의 질과 연관된 질병 부담이 높다. 필자 어머니도 얼굴에 퍼진 대상포진으로 10년째 후유증이 이어졌다. 고령층이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을 때 대상포진이 퍼지면 심혈관계 합병증 가능성까지 높아진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과 영국, 호주 등 19개 국가는 국가필수예방접종이나 국가 지원 프로그램 사업을 통해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기 성남시 가평군, 강원 춘천시 강릉시, 경남 통영시 등이 지자체 지원 사업으로 무료 접종을 하고 있다.

대상포진 백신은 약독화 생백신과 유전자 재조합 백신 등 두 가지다. 생백신은 1회 접종이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지만 7, 8년 뒤 예방 효과가 사라져 면역 저하자에게는 접종이 어렵다. 그런데 유전자 재조합 백신은 2회 접종으로 10년 이상 예방 효과가 유지되며 기저질환자와 면역 저하자에게 접종할 수도 있어 보다 선호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 글로벌 제약사는 국내에 대상포진 생백신 공급을 중단했고 영국과 호주는 2023년부터 NIP 사업에서 생백신을 제외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지자체들이 한정된 예산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백신을 주로 지원한다. 올해 기준 대상포진 백신을 지원하는 약 200개 지자체 중 140개 지자체가 생백신을 지원하고 있다. 12개 지자체가 사백신을 단독 사용하고 있으며 28개 지자체는 2가지 종류의 백신을 모두 사용하거나 사용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자체 예산에 따라 지원 조건이나 대상도 달라져 의료 불평등도 우려된다.

국가적 사업을 시행할 때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사업을 해야 하지만 예산이 없으면 진행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한정된 예산 안에서 보다 많은 사람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NIP 사업을 모두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일부 비용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할당할 수도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 홍콩처럼 지원 대상별 지원 비율을 조정하거나 정부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정부 지원 예방접종에서 매년 높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고령층 백신 지원은 의료 사각지대를 줄이고 건강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비용 대비 효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보건당국은 특히 고민해볼 문제다.

#이진한#메디컬리포트#건강한 노년#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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