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성호]한국인 간첩법으로 구속하는 中… 중국인 간첩법 수사 못하는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9일 23시 09분


황성호 사회부 기자
황성호 사회부 기자
12·3 불법 비상계엄 사건의 여파로 별달리 조명받지 못한 사건이 하나 있다. 지난달 초 송치된 ‘중국인 국가정보원 촬영 사건’이다. 중국인 A 씨는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서초구 국정원 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국정원 바로 옆에 사적 제194호 헌인릉이 있는데, A 씨는 헌인릉을 촬영하다 국정원 건물까지 ‘우연히’ 찍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저 관광객이라는 것이다. A 씨의 주장처럼 경찰이 확보한 그의 휴대전화에는 해외 여행 사진만 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튿날 A 씨를 풀어줬다.

하지만 그의 행적에는 수상한 점이 적지 않다. 경복궁 등 주요 문화재를 찾는 통상적인 관광객과 달리 해외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적인 헌인릉을 찾았다는 점이 우선 그랬다. 중국판 위키피디아인 ‘바이두 백과’에는 ‘獻仁陵(헌인릉)’이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A 씨는 한국 입국 직후 렌터카를 빌려 타고 바로 헌인릉으로 향했다.

경찰 내부에선 A 씨에게 적용할 혐의를 두고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미심쩍은 행적이 많아 수사 강도를 높여야 하는데, 적용할 마땅한 법이 없다는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A 씨가 검찰에 송치될 때 적용된 혐의는 군사기지법 및 문화유산법 위반이었다. 문화유산법까지 적용한 건 촬영을 할 때 문화유산 훼손의 가능성이 있으니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한 법 규정까지 샅샅이 찾아낸 결과다. 두 법의 최고 처벌 수위는 징역 2∼3년 형에 그친다. A 씨는 출국금지된 상태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반면 중국은 2023년 11월 한국인 사업가 B 씨를 반(反)간첩법 위반 혐의로 붙잡아 여전히 구속 중이다. B 씨는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회사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서 일하던 당시 기술을 유출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열린 재판에서 중국 검찰은 B 씨에 대해 징역 최저 11년에서 최대 15년의 구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중국 수사 당국은 열 달간 가족 면회도 가로막으며 수사했다.

2023년 7월 시행된 중국의 반간첩법을 뜯어보면 앞으로 B 씨와 같은 사례들이 많을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고형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인 반간첩법은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사항을 포괄적으로 처벌한다. 이 때문에 주중 한국대사관은 “중국 국가안보 및 이익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는 행위도 유의해 달라”는 공지를 교민들에게 했을 정도다.

한국과 중국의 사례를 든 것은, 한국도 중국처럼 인권을 무시한 수사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핵심 기술과 안보가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법적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간첩법 적용 대상을 ‘적국(북한)’에서 외국으로 넓히는 논의는 야권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한국 기밀을 빼돌리려는 나라가 북한뿐은 아닐 텐데, 그 외의 국가에 대해 적절한 법적 대응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야권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가한 전문가조차 “중국은 우리 국민을 간첩죄로 처벌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불균형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도둑질을 해도 되는 허술한 국가’라는 인식이 퍼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한국인#간첩법#구속#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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