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기자] 「왼쪽엔 시어머니 오른쪽엔 친정어머니. 그리고 두 분은 모두 치매환자」.
주부 金明玉(김명옥·52·서울 용산구 원효로1동)씨는 매일 밤마다 사랑하는 남편(60)의 곁을 떠나 「두 어머니」 사이에서 잠을 청한다. 한밤중에 일어나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는 시어머니(86)를 진정시켜야 하고 새벽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친정어머니(84)의 기저귀도 갈아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두 어머니와 한 방에서 자기 시작한 지난해 7월이후 「깊은 잠의 달콤함」은 잊었지만 김씨는 피곤하지 않다.
7남매 중 넷째딸이고 둘째 며느리인 김씨가 두 어머니를 모실 수밖에 없었던 건 「어느날 운명처럼 찾아온」 두 어머니의 치매때문.
함께 살던 막내 아들이 사업실패로 갑자기 숨지면서 그 충격때문에 조금씩 치매증상을 보이던 친정어머니는 큰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끼던 넷째딸 김씨를 전혀 알아 보지 못했고 수차례의 병원치료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치매말기 환자인 친정어머니 모시는 일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는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김씨는 역시 치매를 앓고 있던 시어머니도 함께 모시기로 결심했다.
서울시 가정도우미를 하면서 알게 된 무의탁 할머니(75)도 모셔와 외로운 두 노인의 말동무로 해 드렸다.
김씨에게 남은 건 치매와의 일전(一戰)뿐.
「병의 진행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고칠 수는 없다」는 치매도 김씨의 이같은 정성 앞에선 무릎을 꿇고 말았다.
친정어머니는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김씨를 알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못쓰는 다리대신 엉덩이를 움직여 부엌 냉장고의 음식을 꺼내 먹기도 한다. 김씨는 8일 『주위에서 「전생에 죄가 많으니 저런 병에 걸리지」라며 혀를 차는 소리를 들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치매보다 더 힘든 건 가족이나 이웃의 무관심과 몰이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