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책의 탄생」펴낸 김언호 한길사 사장

[이광표 기자] 「우상과 이성」 「해방전후사의 인식」 「민족경제론」 「4월혁명론」 「드레퓌스사건과 지식인」 「리얼리즘 미학의 기초이론」…. 80년대 어둠의 터널 속에서 자유민주라는 한줄기 빛을 갈망하던 젊은이들을 가슴 설레게 했던 책. 그렇게 한시대를 풍미한 책과 함께 가슴 시린 청춘을 보냈던 젊은이들이 이제 서른을 훌쩍 넘어 불혹(不惑)의 고개로 접어들고 있다. 힘겹고도 아름다운 그들의 청춘 뒤편 한 귀퉁이엔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있었다. 그 한길사를 이끌어온 해직기자 출신 김언호씨(53). 벌써 출판의 길 20년. 줄곧 남의 책만 펴내던 그가 자신의 책을 냈다. 「책의 탄생 1, 2」(한길사 발행). 현대사 최대의 격동기였던 85∼87년 자신의 출판 역정을 일기체로 담담하게 그려낸 제1권과 「한국사신론」 「장길산」 「고인돌」(만화) 등 책의 탄생에 얽힌 숱한 애환을 들려주고 고은 신영복 등 저자와의 만남에도 초대하는 제2권. 이 두권의 책 속엔 「권력은 짧고 책은 영원하다」는 김씨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장으로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 쑥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망설이기도 했지만 우리 시대 우리 책 얘기라는 생각에 출판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문을 텄다. 『책은 자원입니다. 컴퓨터도 고속전철도 모두책의힘,사상의힘에서 나옵니다. 책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거대한 인프라인 셈이죠』 그는 기자직에서 해직된 다음해인 76년 한길사를 창립, 스테디셀러인 「오늘의 사상신서」시리즈 1백80여권을 비롯해 「함석헌전집」(전20권) 「한국사」(전27권) 등 1천2백여권을 만들어내며 한길사를 대표적인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로 끌어올렸다. 한길사와 인연을 맺었던 저자들의 이름을 거론해보면 가히 우리시대 지성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 한길사의 간판은 79년부터 10년간 전6권으로 발행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무슨 암호인양 「해전사」로 불렸던 이 책을 접하지 않고 80년대를 관통한 젊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제1권의 발행부수는 약 40만부. 그야말로 당대의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해전사」에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해전사」는 지난 시대의 사회사입니다. 역사는 변하는 것이고 출판은 새로운 시련의 과정이기에 이 시대의 사회사상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내는데 모든 걸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