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모든 것을 버리고 구국의 일념으로 평생을 살다간 백범정신의 부활이 간절합니다』
26일은 白凡 金九(백범 김구)선생 피살 48주기. 지난 65년 백범선생 암살범 安斗熙(안두희·사망)를 응징한 이래 32년을 「백범정신 되살리기」에 바쳐온 郭泰榮(곽태영·61·백범독서회장)씨는 25일 백범이 잠들어 있는 효창공원묘역을 찾았다.
그는 일제치하에서 백범과 독립운동을 같이 했던 숙부의 영향으로 백범을 흠모하게 돼 11세이던 지난 47년에 발행된 초판 백범일지(白凡逸志)를 뜻도 모르고 읽었다.
백범 피살에 큰 분노를 느낀 그는 19세로 고교3년이던 지난 55년 「안두희를 응징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칼로 안두희를 찌른 응징의 거사는 65년 겨울 강원 양구에서 이루어졌다.
곽씨는 『재판에서 실형을 구형받았지만 1백20만명의 탄원서 덕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며 『그 이후의 내 삶은 백범의 발자취를 찾고 백범살해의 진상을 캐는데 바쳐졌다』고 회고했다.
30여년 백범기념사업회 이사로 일했고 4월혁명연구소도 이끌었던 그는 요즘 백범독서회 회장으로 백범일지 보급운동에 심혈을 쏟고 있다. 벌써 전국 각급 학교에 백범일지 5만여권을 보냈다. 백범일지를 38번이나 읽었지만 읽을때마다 맥박이 고동침을 느낀다.
곽씨는 『백범 피살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하태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