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백령종합고 백원배 교감

  • 입력 1997년 9월 9일 07시 57분


『백령도는 이제 낙도(落島)가 아니라 낙도(樂島)입니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반평생을 보낸 백령종합고교 백원배(60)교감은 요즈음 살맛이 난다. 백령도가 널리 알려지고 관광객이 몰려와 주민 소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백령도 주민들이 인정하는 정신적인 지주. 연세대 재학중이던 4.19때 옥고를 치렀던 그는 75년 KBS 수원주재기자로서 취재차 백령도에 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는 섬사람들의 열악한 생활과 특히 학교의 헝클어진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백교감은 기자신분증을 소포로 회사에 보내고 백령도에서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던 그는 곧바로 백령중 국어교사로 자리잡고 우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책 구입을 최대한 늘렸다. 장거리 통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지었고 책걸상을 직접 만드는가 하면 낡은 담을 정리했다. 고향에 있던 집과 땅을 팔아 아예 백령도 바꾸기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86년 「백령지역 교육 문화발전 연구회」를 발족시키고 효녀 심청이 몸을 던진 백령도앞바다 인당수 부근에 심청각 건립을 추진해 백령도 관광에 새 장을 열었다. 백교감은 요즘 무척 바쁘다. 6.25때 첩보부대인 켈로부대원으로 활약했던 백령도 주민들 중 살아있는 19명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게 해야 하는 책임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고 백령도에 대학이 들어서면 내가 할 일은 거의 끝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백령도〓박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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