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를 먹으며 눈물을 짜는 할머니. 『순대를 보니 첫사랑 생각이 나는구먼. 순대를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는데…』
X레이를 찍는 환자에게 웃으라고 명령하는 푼수간호사. 『이 기계는 우리 선생님이 새로 개발한 거란 말이에요』
옷은 귀부인같이 입었지만 채찍으로 남자를 후려치는 사디스트. 『돈이 필요하다구? 너 아주 귀엽게 생겼구나. 나도 예전엔 그랬었지』
정애리 혼자 하는 역이다. 서울 동숭동 샘터파랑새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마차」(김동기 작 류근혜 연출). 다양한 인간군상을 표현하는 일인다역으로 10월 정애리는 연기생활 20년만에 처음으로 연극에서 상을 탔다.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
『TV드라마에 1백편 넘게 출연하면서도 못해본 역할들을 이번에 다해봤어요. 주책없는 할머니역도 처음이고, 푼수끼있는 역도 그렇고…지금까지의 정애리 이미지를 깨보고 싶었거든요』
80년대 최고의 인기드라마 「사랑과 진실」 「배반의 장미」를 기억하는 관객들은 놀랐을지도 모른다. 반듯하고 이지적이면서도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기술이 있는, 얼음장 지성과 불꽃 같은 내면을 동시에 표현할 줄 아는 정애리의 연기력. 그런데 소극장을 찾은 젊은 관객들은 정애리의 푼수연기를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연기생활 20년을 맞는 그에게 이제 연기가 무엇인지 알겠더냐고 물었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20년이네요. 78년에 데뷔했으니까…. 연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사는 게 무엇이냐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당하게 살면 되는 것처럼 연기도 그렇지 않을까요』
연기도 야합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한숨. 처음으로 연극상을 받았으니 일년에 한두편은 무대에서 치열한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12월28일까지. 02―763―8969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