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1년 중에서도 가장 춥다는 소한과 대한 사이. 길가에는 벌거벗은 초목이 새벽의 가로등 불빛 아래 을씨년스런 겨울 풍경을 더욱 썰렁하게 그리고 있을 시각, 나는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 남대문 꽃시장을 찾는다.
온기라고는 사람들의 입김이 전부인양 온통 얼어붙은 서울의 새벽 하늘 아래에서 맛보는 한여름의 꿈이랄까, 아니면 1천만 시민 중에 극히 일부만이 느낄 수 있는 축복이랄까. 아무튼 새벽에 남대문 꽃시장에서 만나는 백화만초(白花萬草)는 그때마다 내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마법사가 되곤 한다.
꽃꽂이 강사인 아내를 따라 남대문 새벽 꽃시장을 찾은지도 벌써 2년여. 그러나 들를 때마다 새로운 꽃과 낯선 사람들의 북적임으로 한번도 같은 모습은 볼 수가 없기에 늘 신비로운 감상에 빠져들곤 한다.
물론 새벽잠을 줄여야 하고 차갑기만 한 영하의 겨울공기를 가르며 꽃시장까지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한때는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장 한복판에서 꽃향기에 취해 원색의 고운 빛깔을 대하는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다. 오히려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웠던게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다. 1주일에 한차례씩 따라나섰던 꽃시장이었는데 이제는 낮시간에도 가끔 들를만큼 내게 가까워졌다. 거래처 손님들에게 선물할 꽃바구니는 직접 고를 수 있을 수준의 안목도 생기게 됐다. 꽃시장의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지내기 시작하면서는 출입빈도가 더욱 늘어났다. 이젠 적당히 값을 흥정할 수 있는 배짱까지 갖게 됐다. 모두가 아내 덕분이다.
김석현(서울 종로구 삼청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