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어릴 때부터 바닷속 전설의 도시 애틀랜티스를 믿으며 전생에 해녀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동경해왔던 세상.
기다리던 첫 다이빙은 그해 4월 속초 영금정 앞바다였다.
20여분 떠다녔는데 잠깐 꿈을 꾸고 난 기분. 그렇게 차츰 바닷속에 빠져들었다.
그곳엔 육지와 또 다른 생명들이 있었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존재들이었건만 말보다 더 진한 교감이 오갔다.
스킨스쿠버를 통해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뜬 경희중학교 국어교사 이정원씨(42). 40평생 살아오며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바닷속을 체험하면서 그녀는 뭍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허투루 만났던 사람들의 겉모습, 그 이면에 바다처럼 자리하고 있을 또 다른 심연이 보였다.
허우적거리면 무섭고 두렵지만 내맡기면 자유와 여유를 주는 바다. 뭍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뭍이 싫어 바다로 갔는데 그녀는 어느새 누구보다 강인한 뭍사람으로 변해있다.
그러나 그녀가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소녀시절 그녀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소통수단은 ‘글’이었다.
전근을 밥먹듯이 하던 군인아버지의 ‘떠돌이 삶’과 이 틈새에 끼여 세상 것들과의 숱하고 부자연스러웠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부대낌. 쉽게 정을 주면 상처도 깊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다.
모범생 꼬리표에 걸맞게 단정했던 젊은 날. 그러나 세상과의 소통에 익숙지 못했던 마음속은 늘 휑했다.
경희대 국문과 졸업과 함께 시작한 중학교 교사생활. 그녀는 정리와 조용함을 강요하는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그녀의 가슴이 한순간 확하고 불꽃이 일면 또 하나의 그녀가 미친 듯 날뛰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 마음을 제대로 읽었던 유일한 한 남자. 홀시어머니에 외아들이란 조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일상은 겉보기엔 평범했다. 친정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잇따라 세상을 뜨기 전까진. 식물인간으로 6개월을 지내다 눈감은 어머니, 2개월 뒤 외할머니마저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변했다.
아! 풀잎 이슬같이 헛된 삶.
밥도, 말도, 사람도, 글쓰기도 싫었다.
그 밤, 불면의 밤으로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그저 누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면도날로 왼쪽 손목을 그었다. 분수처럼 쏟아지던 핏줄기…. 남편의 발견으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오히려 모든 것을 비워낸 듯 가벼웠다.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동료교사 얘기를 들은 건 그즈음, 94년 봄이었다.
그리하여 옛 제자들이 몰라볼 정도로 따뜻한 선생님으로, 말이 아닌 체험으로 신을 얘기하는 알짜배기 가톨릭 신자가 됐다.
세상과의 소통에 어눌했던 한 소녀는 이제 바다를 만나 더욱 많은 인간과 생명, 사물과의 어우러짐을 꿈꾸는 원숙한 중년으로 우뚝 서있다.
〈허문명기자〉